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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22) -- 그리스 필리피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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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그리스 필리피 유적  

필리피 [Philippi]

필리피는 네아폴리스(카발라)의 연안 평야와 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그리스 카발라 주에 있는 지금은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작은 구릉마을로 

카발라에서 20km 떨어져 있다. 


 기원전 358-354년 경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필리포스(필립비) 2세가 

은과 금광으로 부유해진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필리피라고 명하였다.

 기원전 168년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점령하고 그로부터 20년 후에 

로마의 속주도시로 되었다. 

기원전 31년 필리피 시는 이탈리아의 도시들처럼 자치권, 면세권, 절대사유권 등

 로마의 권리를 누리는 자치시로 승격되었다. 

주민 구성도는 로마 군인의 파병 등으로 인해 인구의 절반이 로마인이었고, 

유대인들도 소수의 그룹을 형성하여 살았다. 

주민 분포상 종교도 여러 가지로 혼합되었으며 경제적으로 윤택하였다.

 사도 바오로는 2차 전도 여행 시기인 50-52년경 

실라스와 티모테오, 그리고 루카와 동행하여 이곳에 교회를 세웠다(사도 16). 

필리피에서 바오로는 먼저 유다인의 기도처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는 유다교 개종자요, 

자색옷감 장사인 리디아의 집에 머물렀다(사도 16,14-15)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반대자들의 고소로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난 뒤 치안관들의 요청으로 이 도시를 떠난다(사도 16,16-40).

 

필리피 사람들은 바오로에게 있어서 '유럽에서 얻은 맏아들' 이었다. 


바오로는 이 교회에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제3차 전도 여행 때도 두번씩이나 방문하였고, 


그곳의 신자들도 사도 바오로에게 감사와 애정의 표시로 물질적 도움을 주었다.

 바오로는 다른 지역의 선교 활동 중에도 필리피 교회와 


계속 긴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어떤 교회보다도 이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였다(사도 16,12-40, 1테살

2,2, 1코린 7,5-7, 필리 ,15-16). 


그런데 바오로 사도가 감금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필리피 신자들은


 에파프로디토스를 시켜 좋은 위안의 선물을 주었다. 


바오로를 도우러 왔던 에파프로디토스가 병이 들어 죽을 고비까지 이르렀다가


회복하자 바오로는 그를 보내며 필리피 서간을 썼다. 


사도 바오로는 필리피를 떠나 암피볼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로 갔다

(사도 17,1).

현재 필리피에는 음악당, 바실리카 성당, 도시와 거리의 모습 ,


 바오로가 갇혔던 감옥 등 폐허가 된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유적자 매표소 입구의 안내판>



<필리피가 번성했음을 증명하는 음악당 유적-현재도 연주회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돼버린 필리피 유적들>
 

 



<바실리카(성당) 유적- 십가가 새겨진 잔해가 많다>








 

 



<바오로가 갇혔다는 필리피 감옥>


 

 



<큰 돌로 튼튼하게 포장된 도로도 지진 앞에서는 속수무책........>






 

지진으로 무너지지 않고 상부 무게를 지탠하지 못해 파괴되었다는 성당 유적

























 

 



<사도 바오로의 행적을 증명하는 타일 모자이크>


 

 



<공중목욕탕과 수세식 화장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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