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퇴팅 성모 경당

독일의 성모성지로 알려진 시청과 대성당이 있는 알퇴팅의 넓은 광장에는 

많은 기적을 일으킨 '검은 옷의 성모상'을 안치해 놓은 

8각형 모양으로 50여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성모경당이 있다. 

경당 4면의 회랑 천정과 벽에는 지난 500년 간 성모님의 전구로 치유 은혜를 입은

  순례자들의 소원과 감사의 봉헌 액자 5만여 개 액자들로 빈곳이 없다.


알퇴팅 대성당



알퇴팅 시청사와 중앙광장


시청 앞 광장의 성모자 상 석상


성 안나 성당






◆  파리외방전교회 Paris Foreign Missions Society  ◆        
 
 
출처 : [가톨릭대사전]  참조

 외방전교회는  파리에1658년 7월 29일 창설된 후,

1831년 9월 한국에 처음 진출하여 한국천주교회의 초창기 발전은

물론 교회를 통하여 한국 민족과 고락을 같이 한 선교단체이다.

   한국진출 : 1825년 사제 파견을 요청하는 한국인 교우들의 편지를 접하게 된 교황은

1827년 9월 1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선교사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서는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였고,

파리 외방전교회 역시 프랑스혁명 때문에 회원이 10여명 밖에 없었고 돈도 없어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방콕의 보좌주교이던 브뤼기에르(Bruguiere, 蘇) 주교는 한국 선교사를 자원하였다.

그는 1831년 9월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초대 조선대목(朝鮮代牧)으로 임명되자

즉시 입국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 3년이 지난 뒤 만주에 도착하였지만

한국 입국의 많은 어려움 때문에 1835년 10월 한국을 바라보면서 만주의 교우촌 마가자(馬架子)에서 사망하였다.

 

 

그러나 1836년 모방(Maubant, 羅) 신부, 1837년에 2대 조선대목인 앵베르(Imbert, 范) 주교와

샤스탕(Chastan, 鄭) 신부가 입국하여  파리 외방전교회의 본래 목적에 따라 3명의 소년을 선발하여

마카오에 보내 신학 교육을 받고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1845년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배출되었다.

   이에 앞서 1839년 1월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시작되면서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고

 

1839년 9월에는 마침내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3명도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그 후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한국의 입국을 시도하

1845년 10월 3대 조선대목 페레올(Ferreol, 高) 주교, 다블뤼(Daveluy, 安) 신부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충청도 강경(江景)에 도착하였다.

 

 

1846년 병오(丙午)박해를 치른 뒤 1866년 병인(丙寅)박해가 일어날 때까지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를 비롯하여 메스트르(Maistre, 李),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푸르티에(Pourthie, 申), 페롱(Feron, 權), 브르트니에르(Bretenieres, 白), 볼리외(Beaulieu, 徐),

도리(Dorie, 金), 위앵(Huin, 閔) 신부 등이 계속 입국하였지만 1866년 병인년 대박해가 일어나자

모두 순교하고 살아남은 3명 선교사도 중국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고,

10년이 지난 1877년이 되어서야 다시 한국에 입국할 수가 있었다.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 전경

 

전교회 성당

 

성당 내부

 

파견 선교사들이 성모님의 보호와 은총을 비는 성모

성모당에 모셔져 있는 성모자 대리석 상

 

명동 주교자 성당 신자들이 기증한 한국순교성인현양비

 

감사의  표시로 기증한 동종

전교회 정원에 있는 성상들

파리 시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름모를 성당들

 

기적의 메달 성당 , Chapelle Notre-Dame de la Médaille miraculeuse

 

기적의 메달은 성모 마리아가 파리에 있는 성 빈첸시오 바오로 자비 수녀원 내 소성당에 발현하여

 카타리나 라부레(Sainte Catherine Labouré) 수녀에게 직접 준 메달을 말한다.

1830년 7월 18일~19일 저녁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처음 성모의 발현하셨

1830년 11월 27일 성모의 두 번째 발현 때 이 메달을 성모께서 라부레 수녀에게 보여 주면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커다란 은총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로 인해 기적의 메달 성당은 소성당이지만 성모의 발현지로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신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성당 내 제대 위에는 성모의 첫 번째 발현 장면이 그려져 있고

정면에는 메달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의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우측에는 두 번째 발현을 조각한 모습이 있으며

그 밑에는 사망한 후 57년이 지나 시복을 위한 시신 발굴 당시(1933년)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라부레 수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기적의 메달 성당에서 봉헌한 순례 감사 미사

   아담한 파이프 올갠이 설치되어 있는 2층 뒷편

유럽성지순례 -- 포르투갈 파티마 대성당

 

파티마 성모발현지는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님이 발현하여 

죄의 회개와 로사리오의 기도를 권고한 사건으로 이 후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30년 레이리아의 주교가 신빙성을 인정하면서 ‘파티마의 로사리오 성모’ 발현지로 공인되었다.

포르투갈 파티마 성모발현지 대성당은1928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대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여 

1953년 10월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로사리오 대성당이라고도 하는데, 묵주의 기도 15개의 경당(소성전) 과

성당 전면 양옆에는 발현 목격자 3명의 무덤이 있으며,

대형 수정십자가 아래 7t 무게의 황금관이 올려져 있는 높이 약 65m의 종탑이 있다.

대성당 양쪽에 주랑이 있어 수녀원과 병원이 있는 건물을 포함한 여러 채의 건물과 연결해 주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모가 발현했던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이웃한 넓은 산책로인 코바에는 순례자들이 모여드는데 이 주변이,

성모님이 어린이들 앞에 발현했다고 믿어지는 장소에 작은 성전이 있기 때문이다.

파티마 지도

1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광장 동편에 자리한 대성당

대성당 앞에 서 있는 예수 성당은 순레자들을 축복하는 모습이다.

천상모후의 관을 쓰시는 성모님이 묘사되어 있는 천정 부조작품과  성당 중앙제대

 

성당 안에는 성모님 발현을 경험했던 루치아와 프란치스코의 무덤이 있다.

예수님의 생애를 내용으로 하는 14처 경당이 대성당 양쪽에 마련되어 있어

소수의 신자들이 따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규모가 꽤 큰 파이프 올갠

대성당 종탑 중간 부근에 손에 묵주를 건 성모님의 모습이 참 자애로워 보인다.

멀리서나 가까이서 보아도 너무나 성스럽고 아름다운 대성당

성당 뒷편의 아침 일출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녁 촛불 행진 때의 대성당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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