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 해외성지순례/10 중동성지순례'에 해당되는 글 30건

  1. 2017.03.06 중동성지순례--느보산 모세기념성당
  2. 2017.03.06 중동성지순례-- 요르단강 예수님 세례터
  3. 2017.03.05 중동성지순례 -- 요르단 페트라 유적
  4. 2017.03.04 중동성지순례-- 요르단 페트라 가는 길
  5. 2017.03.04 중동성지순례 --이스라엘-갈릴래아 호수 부근의 성지들
  6. 2017.02.27 중동성지순례--이스라엘 갈릴래아 호수
  7. 2017.02.26 중동성지순례 -- 이스라엘 타볼산
  8. 2017.02.17 중동성지순례 --이스라엘-사해
  9. 2017.02.14 중동성지순례--예수님의 고향 나자렛
  10. 2017.02.14 중동성지순례--이스라엘-예수님 탄생 대성당
  11. 2017.02.14 중동성지순례--이스라엘 - 목동들의 언덕성당
  12. 2017.02.14 중동성지순례--예루살렘7 -성모영면성당, 최후의 만찬
  13. 2017.02.13 중동성지순례--예루살렘6- 다윗성채와 황금돔
  14. 2017.02.12 중동성지순례--이스라엘 예루살렘5- 수난의 길,
  15. 2017.02.12 중동성지순례--이스라엘 예루살렘4 -벳자타 못과 성 안나성당
  16. 2017.02.10 중동성지순례 -- 이스라엘 예루살렘3-눈물성당과 게쎄마니 대성전
  17. 2017.02.10 중동성지순례 --이스라엘 예루살렘2-주님의 기도 성당
  18. 2016.10.11 중둥성지 순례 -- 이스라엘 예루살렘
  19. 2016.10.03 중동성지순례 -- 이스라엘 쿰란
  20. 2016.10.03 중동성지순례 -- 이스라엘 엘리코와 사해
  21. 2016.10.01 중동성지순례 -- 홍해와 시나이반도
  22. 2016.09.30 중동 성지순레 -- 시나이산.
  23. 2016.09.30 중동 성지순례여행 - 시나이 르비담
  24. 2016.09.05 이집트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25. 2016.09.03 이집트 룩소르 합셉수트 장제전
  26. 2016.08.10 중동성지순례 -- 룩소르 카르낙 신전
  27. 2016.08.09 중동성지순례 -- 이집트 룩소르 신전
  28. 2016.08.07 중동성지순례 -- 이집트 카이로 -> 룩소르
  29. 2016.08.06 중동성지순례 --카타르 ->이집트
  30. 2016.08.03 2010년 중동성지순례여행 --출국,카타르

느보산 모세기념성당

출애굽 여정의 종착지인 느보산은 해발 835m로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의 방랑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러가기 직전

이곳에서 가나안 땅을 보며 운명한다.


느보산 올라가는 길에 본 주변풍광과 방목되고 있는 낙타 무리.




느보산 정상에는 모세에 관계된  유물들이 많이 있다.


모세 기념성당 출입구 석조 조각.


성당 복원 공사가 중단된 째 거의 방치되고 있다.






모세의 구리뱀 지팡이와 그 곳에서 바라본 풍광--멀리 사해와 에리코를 볼 수 있다.


1932년 건립된 프란치스코회 수도원과 성당


4세기경 세워진 모세 기념교회의 모자이크 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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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세례터

갈릴래아 호수 바로 윗쪽에 위치한 요르단강 예수님 세례터

좁은 강폭에 흙탕물이 흐르는 곳이다.


라파엘 여행사의 성지순례단이 이용한 광광버스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에게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은 세례터 입출구.


세례터




그리스 정교회 소속의 황금돔 성당-- 원색의 성화와 이콘이 많다.

세례터 주변의 주거 흔적

세례터 주변에는 기독교의 여러 종파들의 시설물이 여럿 있다. 


갈릴래아 호숫가의 별장과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대조적이다.



Posted by Theo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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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새겨진 장밋빛 도시 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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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가파른 협곡에 묻힌 채 긴 세월 잊혔던 고대 도시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 태생의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역사의 망각에서 깨어났다

거기에는 장밋빛 사암을 뚫고 8킬로미터에 걸쳐 건설된 수많은 

주거지와 무덤 · 극장 · 신전 · 목욕탕 · 극장 · 장터가 있었다.


모세의 형 아론이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죽은 자리에 만들어진 묘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부르크하르트는 

일행의 대장에게 자신도 아론의 묘를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대장의 허락을 받아 그는 험한 협곡을 지나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붉은빛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 그는 붉은 장밋빛 도시의 

발견자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붉은 사암을 뚫고 건설된 페트라

사해와 아카바만(灣) 중간에 위치한 페트라는 기원전 400년경에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 나바테아인의 종교적 중심지이자 수도였다.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인들은 고대 사회에서 인기가 높았던 

알로에 · 계피 · 유향 등을 남아라비아와 인도에서 지중해 지역으로 운반했고

 기원전 4세기부터 전설적인 유향로(乳香路)의 북부를 장악할 정도로 그 세력이 컸다. 

척박한 지역이었지만 물이 있는 장소를 알고 

사막의 모래바람을 피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발 950미터에 위치한 은닉처 페트라는 그 주위로 높고 가파른 암벽들이 

어두운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어서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했다. 

로마도 무력으로는 페트라(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를 정복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2세기 초 페트라의 로마 합병에 대해 학자들은 

로마가 페트라를 정복한 게 아니라 페트라가 합병을 정략적인 이용으로 추정한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좁은 협곡 시크(Siq)는 도시로 진입하는 통로로, 

밖에서는 그 입구가 잘 보이지 않으며 입구부터 높이 100미터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사암 절벽이 1킬로미터나 좁은 길을 덮칠 듯이 이어져 있고 

페트라는 이러한 길을 지나야 나온다. 

도시 길이는 8킬로미터에 달하며 시가지 입구는 동쪽의 시크, 

남쪽의 투그라, 북쪽의 투르크 마니에라라는 세 개의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바테아인들은 지중해 연안까지 여러 대상로를 장악했는데 

 모세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 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면서 지났다고 하는 ‘왕의 길’도 있다. 

대상들은 페트라를 통해 이집트의 기자 · 지중해 · 시리아 등으로 여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페트라 도시민들은 통행요금 징수와 아스팔트 무역의 수입으로 아주 부유했다.

페트라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누렸는데 

당시 페트라의 인구는 3만 명을 넘었다. 

페트라는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포장도로 · 목욕탕 · 상점 · 극장 · 장터 · 궁전 · 체육관

 · 계단식 정원 · 테라코타로 만든 정교한 배수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다.

페트라에서는 골짜기가 워낙 좁아 큰 규모의 건물을 세울 수 없어서 

도시민들은 그들이 받들던 신 · 망자들과 함께 바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파거나 조각하기 쉬운 사암을 깎아 무덤과 주거지를 만든 것이다. 

 현재까지 페트라에서는 800개의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었다.

106년 로마에 정복된 후 페트라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쇠락의 길을 피하지 못했는데 다른 대상 무역로가 발견되어 

기원 3세기부터 그 중요성을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표소에서 1km쯤 떨어진 시크 (페트라 계곡의 동쪽 입구)까지의 

비포장 도로 양쪽에는 모양을 다듬고 동굴을 판 사암들이 많이 있다.

걷거나 말을 타고 관광할 수 있다




페트라 동쪽 입구인 시크 부근 ---관광안내소와 경찰사무소가 있다.



시크의 입구 모습---문을 달았던 석조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시크에서 신전이자 무덤인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파라오의 보물)까지는 걷거나 마차와 낙타관광을 할 수 있다.



문을 달았던 흔적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파라오의 보물)

페트라의 수많은 건축물과 조각 중에서도 단연 방문객들을 감탄케 하는 것은 

장밋빛 사암을 깎아 만든 신전이자 무덤인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파라오의 보물)이다. 

이 기념비적인 건물은 시크를 통과하자마자 나타난다. 

높이 40미터, 너비 28미터의 정면 모습은 웅장하고 예술적으로도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이 건축물은 헬레니즘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건축 전통을 따르고 있다.

앞에 넓은 광장을 거느리고 있는 카즈네피라움의 정면 모습은 

기둥과 지붕, 여러 조각상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정면 중앙에는 대좌가 있고 그 위에 항아리가 있는데 

베두인들은 그 안에 파라오의 보물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고고학자들은  나바테아왕 하리스 4세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최근에는 영화 '인디아니존스/마지막성배'촬영장소로 유명해졌다.




보석같은 사암 내부를 파서 만든 무덤의 외형과 내부모습




반원형 야외극장

2세기 초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하고 로마인들이 확충한 

너비 40미터의, 33개 계단으로 된 극장 유적은 

바위산을 반쯤 깎아 움푹하게 만든 건축물로 약 6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극장 왼쪽에 있는 로마시대의 시가지에는 열주대로가 뻗어 있고 

왕궁 · 신전 · 공공욕장 등의 유적이 있다.

그리스나 로마의 도시국가에서는 주민의 10%를 수용할수 있는

야외극장을 건설하는데 극장의 규모로 주민 수를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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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페트라 가는 길

"시간의 절반만큼 오래 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 (영국 시인 존 버곤 신부)로

묘사되는 페트라 유적은 요르단 수도 암만 서남쪽 150km에 있다.


사막이자 고원지대를 올라가는 구불구불한 험한 길을 꽤 올라가면

골짜기에 상당한 크기의 댐이 있다.

고원의 사막지대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꽤 큰 규모의 댐의 물은 이곳에서는 생명선 같은 것일거다.





아직도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의 거주지와 고원 사람들의 주택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 시간 넘어 차를 타면 높은 고원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군데군데 마을이 형성되어 농사와 목축업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이슬람 사원이 마을의 중심을 이룬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 들어가 주유하는 동안

잠시 휴식하면서 실내나 화단의 생기있는 식물을 볼 수 있다.


'무사와디'(모세의 계곡)에 있는 이슬람 사원과 '모세의 샘'


페트라가 가까워지자 산중턱에 제법 반듯한 집들이 보이고 나무들도 보인다.

페드라 시가지 전경


페트라 시가지

유난히 국산차가 많이 보여 반가웠다.


기념품 가게와 전통의상 가게


요충지에 걸려있는 국왕과 왕세자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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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선언 --산상수훈 성당

갈릴래아 호수 북쪽 완만한 산 위에는 수천명이 앉아 설교를 들을 수 있는

넓은 곳으로 갈릴래아 호수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4세기 말에 건립된 작은 경당과

조금 윗쪽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가 7세기에 세워졌으며

그 유적지 위에 지금의 8각형의 성당이 1930년에 세워졌다.

중앙 돔이 8각형인게 진복 8단을 연상케 한다.

제대가 성당 중앙에 있어 한바퀴 돌면서 관람할 수 있다.



타브가 (5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기념성당)

'일곱 샘'이란 뜻의 그리스어 헤프타페곤에서 유래한 타브가는 

샘이 7개 있어 물이 많고 비옥한 곳이다.


베드로 수위권 기념 성당

타브가의 갈릴래아 호숫가에 검은 벽돌로 지어진 베드로 성당.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고

3번 말씀하시면서 수위권을 내리신 장소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빵과 구운 생선을 나누어 잡수셨다는 성당 제대 앞 바위


헤브론 산에서 내려온 물이 저장되어 국민의 수원으로, 

하구 지역의 기름진 땅의 근원이며 다양한 어종의 물고기가 풍부한 갈릴래아 호수.

베드로 고기 구이를 별미로 요리하는 호수 주변의 음식점

....관광객들의 특식코스로 언제나 붐빈다.


카파르나움

갈릴래아 북쪽 해안 도시인 고대 카파르나움은 

주민이 많고 번화해서 세관과 큰 회당도 있었으며

예수님의 공생활 중심지로 성서는 '예수의 도시'로 지칭한다.

이곳에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첫 제자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들을 간택하신 곳이었다.



배은망덕의 도시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예언대로

도시는 파괴되고 잊혀진지 오래돼,

현재는 갈릴래아 호숫가 종려나무들 속에 폐허더미로 남아 있다.




카파르나움터는 1905년 발굴돼 옛 회당 유적을 발굴하였으며,

베드로의 집터 위에 5세기 경에 세워졌던 유적들을 발굴하였다.

베드로의 집터 위에 서워진 배 모양의 아름다운 성당

유리막 아래가 베드로의 집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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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 호수

길이 21km, 폭 13km의 호수는 수면이 해발 -210m이고 수심은 44m다.

수십 종의 물고기 중 '베드로 고기'가 유명하여 여행자들에게 특미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한 곳으로 복음선교활동의 중심지다.


갈릴래아 호수가에 위치한 여행자들의 숙소이기도 한 키부스

....뒷편 높은 언덕으로 된 곳이 골란고원으로 지금도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키부스 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갈릴래아 호수


호수를 운행하는 관광선의 선착장

에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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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88m이고 종 모양을 한 타볼산 정상에는 4세기의 유적 위에 

1924년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다.








제단 위의 천정에는 모세와 엘리야에 둘러싸인 예수님이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예 유적지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사방의 경치가 훤히 보인다.


성전 옆에 1911년 건축한 그리스 정교회의 엘리야 기념성전.





교황 바오로 6세의 방문기념 조각상.


산 중턱이나 산봉우리에 자리한 이스라엘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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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성지순례 --이스라엘 - 사해

 모세의 유적이 남아있는 타볼산 가는 길에 본 이스라엘의 풍경


나자로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나자로 마을 풍경

아직도 유목생활을 하는 베두인 족의 마을 풍경


해발 0m와 해저 -300m 인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곳의 이정표


황량한 황무지 사막이지만 국토 수호에 힘쓰는 이스라엘의 병사들


사막에 야자수를 심고 베드로 고기를 키우고 있는 이스라엘 협동농장

베드로 고기 양식장

사해

길이 77km, 폭 16km 면적이 약 950제곱 km인 사해는 해저 약 400m보다 

더 낮은 곳에 위치해 구약에서는 소금바다로 불리웠으며

염도 약 25%로 생물이 살지 못하며 익사자도 없다.

해저 418m인 사해 칼리아 비치의 휴게소



호수 바닦에 고운 진흙이 있어 수영객들이 온몸에 머드찜질을 하고

사해비누를 만들고 비료의 원료로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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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성지순례--예수님의 고향 나자렛


주님 탄생 예고 성당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아기 예수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전해 들은 곳에 

세워진 성당으로 이 장소에 세워진 5번째의 교회로 1960~1969에 세워졌다.

성전을 짓기 전 벨라르미노 바카티 신부는 1954~1965(11년간)에 거쳐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수많은 동굴, 몰 저장소, 곡식저장소, 기름틀 포도즙틀은 물론

비잔틴 시대의 성전터를 찾아냈다.

성전터 안에 잘 보수된 소위 주님탄생 예고 동굴은 헤로데 시대의 가정집인데

마리아가 이곳에 살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성 요셉 성당

주님 탄생 예고성당에서 100m 쯤 덜어진 곳에 있는

성 가정 성당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기념성당으로 요셉의 작업장도 있다






구약시대에 이름조차도 나오지 않은 현재의 나자렛


예수님의 첫 기적 카나의 혼인잔치 기념성당

성모님의 부탁으로 물을 질좋은 포도주로 변화시킨 첫 기적을 행한 곳에 세워진 기년성당

---이 곳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부부는 혼인갱신예절을 거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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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성지순례--이스라엘-예수님 탄생 대성당

AD 135년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제2차 유대인 반란을 진압한 후

그리스도교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예수 탄생 동굴 위에

아도니스 신전을 만들었다.

AD 324년헬레나 성녀가 베들레헴 순례에서 예수탄생 동굴을 참배한 후

아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성당 건립을 청해, 

339. 05. 31에 예수탄생 성전을 건립하였기에

첫 번째성탄성당을 콘스탄티누스 성당이라고 불렀다.

529년 비잔틴 제국에 반란을 이르킨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큰 손상을 입었으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565년 복원됐다.

겸손의 문

십자군의 성당 보수공사 시 성당 출입구 

높이를 1.2m, 폭도 겨우 한 사람이 출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약탈자들의 말과 마차의 출입을 막고

왕이나 제후, 이곳을 찾는 모든이가 자기를 낮추고 들어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을 보게 만들었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뒷편에 겸손의 문이 있다


그리스 정교회가 관리를 맡아 이콘과 성물이 많은 성당 

제대 옆의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예수님 탄생동굴이 있고

오직 한 사람씩만 엎드려 참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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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성지순례--이스라엘 - 목동들의 언덕성당

복음서에는 목자들이 있던 곳이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구전에 의하면 예루살렘 동쪽 약 3마일 지점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지금도 양치기 목동이 있으며 추위를 피했던 동굴이 있다.

1954년 프란치스코수도회에서 목자들의 들판에 기념 성당을 지었다.

기념성당


성당 안의 벽화


성당 돔 안 쪽 모습

성당 정원의 분수대


성당 옆 목동들이 추위를 피했던 동굴 모습들


동굴 미사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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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무덤성당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소속 성당으로  50개의 대리석으로 된

 11C 경의 유물인 웅장한 계단이 발견되었으며

층계 양편에 마리아의 부모였던 요아킴과 안나의 묘가 있었고,

층계 맨 끝 오른쪽에 마리아의 무덤이었던 빈 석관과 제단이 자리한다. 

전승에 의하면 토마스 사도는 스승 예수님과 성모님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전도여행에서 뒤늦게 돌아온 사도는 시신이라도 봐야한다며

관 뚜껑을 얼어보니 3일 전에 영면한 성모님 시신은 간데없고

잘 정돈된 수의에서 기묘한 향기가 진동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도들과 신자들은

"예수께서 모친을 부활시켜 하늘로 모셔 가섰다.' 믿었으며

후에 교회는 성모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고

매년 08. 15을 성모승천 대축일로 지낸다.


최후의 만찬 다락방

12제자에게 발을 씻겨주시고 가리옷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신

최후의 민찬 장소인 2층 다락방



다윗왕의 관 안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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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성채 --예루살렘 성


다윗 성채는 예루살렘 성벽의 일부분이며

헤로데 왕이 지은 궁전으로 예루살렘 서쪽을 방어하기 위해

두터운 성벽과 3개의 큰 망대 탑이 있다.

현재의 성채는 16C 중엽 터키의 지배자 술레이만에 의해 재건됐다.



스테파노 문

스테파노가 순교한 부근에 있는 문이라 이름지워졌고,

문에 사자가 조각되어 사자문이라고도 한다.


통곡의 벽(?)


황금 돔 사원--여러 종파들의 종교행위가 이루어진다.

황금돔과 예루살렘 성채 밖의 이슬람교인들의  공동묘지



황금문

11개의 문 중에 가자 아름답다고 '미문'이라고 하며

유대인들은 '자비의 문'으로 불리우는 문이다.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문이기도하다.

황금 돔사원 앞의 문으로 1530년 오스만 터키가 돌로 막아버린 문


예루살렘의 공동묘지

예루살렘 중심부에는 수많은 돌무덤이 있는 공동묘지가 있는데,

올리브 동산에는 유대교인, 황금문 쪽에는 이슬람교인,

그 반대쪽에는 그리스도교인들의 묘역으로 되어 있다. 


눈물성당 옆의 그리스도교인 묘역

가운데 푹 꺼진 낮은 곳이 키드론 골짜기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도로로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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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성지순례--이스라엘 예루살렘5- 수난의 길,

라틴어 VIA DOLOROSA는 '수난의 길'이라는 뜻으로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타 언덕까지 예수 십자가 수난의 길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집히신 곳에 세워진 성당에서 복잡한 예루살렘 성안의 골목길을 지나

골고타 언덕의 성묘 성당에 이르기까지

14처 기도처를 정해 순례객들이 수난 체험을 통해 예수 수난을 생생하게 회상케 한다.


로마 군사들에게 체포된 곳에 세워진 성당의 외형과 스테인드 글래스가 그려진 제대




예루살렘 성안의 복잡한 골목길을 따라가는 14처 기도 길은 항상 인파로 붐빈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14처와는 다르게 

골목이나 벽, 건물 문 등에 기도처가 있어 정신을 집중해야한다.




성묘성당

성묘성당은 '우주의 배꼽'이라 칭하여 그 중요성을 표현한다.

324년 헬레나 황후(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 예루살렘 성지 순례 후 

수난처인 골고타 언덕과 예수님 무덤을 찾기를 원했다.

(빌라도 법정의 피 묻은 돌계단과 십자가는 로마로 가져와 

라테란노 대성당 옆 십자가 성당에 보관하고 있음)

로마의 주피터와 비너스 신전이 세워진 곳이 바로 그 곳 임을 알고

326년 황제의 명으로 길이 150m, 폭 75m의 웅장하고 화려한 성전을 건립하였다.

성당은 614년 경 페르시아에 의해 피괴되고 

629년에 모데투스 그리스 정교회 총 주교에 의해 재건되었다.

1009년 이슬람 군주 칼리프 엘하킴에 의해 성당이 다시 파괴되자

1096년 부터 약 200년간의 십자군 전쟁의 단초가 되었다.

현존 성전은 십자군에 의해 다시 세워져 여러 번의 보수와 개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으나 원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성당 내부의 모습들.....

수많은 순례자들에 의해 떠 밀려 참배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님을 지켜 보시는 성모님 벽화


비수로 가슴을 찔리는 고통 중인 성모님과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상

....이 곳에서 모든 순례객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묵상한다.


예수님의 무덤



예루살렘 성안의 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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벳자타 못

성 안나 성당 구내에 있는 벳자타 못은

몇 십년 동안 눈 먼이를 고쳐주신 에수님의 기적 장소로,

1871년부터 발굴을 시작하여 원래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성 안나 성당

다윗 성채(예루살렘 성벽) 스테파노 성문(사자문) 안쪽 오른쪽에

요아킴과 안나 부부 사이에서 성모 마리아가 출생한 성 안나 성당이 있다.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 볼드인 1세 부인에 의해 1100년 경에 건축된 성당으로

고딕식 출입구와 둥근 지붕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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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성당과 게쎄마니 대성전


눈물성당(Dominus Flevit- 주님이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한숨을 쉬시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곳에

게쎄마니 대성전을 설계한 안토니오 뻬르룻치에 의해  1955년 완공된 성당으로

장례 때 애도의 눈물을 넣었던 눈물단지를 지붕에 안치하였다.

예루살렘 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은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던 성의 동문(황금문)과 

황금돔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막달라 마리아 성당

 러시아 전통 양식의 7개의 양파 모습의 황금 돔 성당은 

러시아 정교회 소속으로 1888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3세가 

어머니를 기념하여 건축하였으며,

내부에는 러시아 화가들의 성화가 장식되어 있다.


게쎄마니 대성전

예수님께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던 동산에 

375~395년에 데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건축되었으나

614년 페르시아 침공과 8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현재의 성당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뻬르룻치가 1919~1924에 재건축하였다.

이 성전 건립에는 세계 16개국의 모금으로 건축되어

'여러나라 민족의 대성전'으로 불리운다.


예수님 생존 때부터 있었던 고목 올리브나무



옛 모습을 재현한 성전 뒷면의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는 예수님과 

잠에 빠진 제자들의 모습이 모자이크 벽화가

예수님의 고뇌를 상징하는 보라색 톤을 띠고 있다.

성전 제대 앞의 예수님께서 기도하던 넓은 바위가 있다.

가시관을 만들었던 정말 길고 날카로운 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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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문(Pater Noster --'우리 아버지' 라는 라틴어) 성당 


예수승천경당 아래 가르멜 수녀원과 붙어있는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4세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리기 위해 건축했으나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된 후

12세게 십자군에 의해 재건축되었으나 후일 이슬람교인에 의해 파괴되었다.

현재의 성전은 1875년 프랑스에서 가르멜 수녀원과 함께 건립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시고,

세상 종말에 나타나는 징조들에 관한 설교도 하신 곳이라고 한다.


예수님 시대 통상언어인 아람어와 히브리어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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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성지순례의 중심지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올리브산 언덕

예루살렘 성채

성경에 많이 나오는 겨자의 꽃


예수님 눈물성당에서 본 예루살렘 풍경

올리브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교회


예수님 승천 경당


승천 경당 안에 있는 에수님 승천 바위와 승천 경당의 막힌 돔의 천장


눈물성당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벽과 그 안의 황금돔 사원 -- 성벽 밖에는 무수한 돌무덤이 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곳에 세워진 눈물경당과 주변의 돌무덤들 


동굴 무덤과 석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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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쿰란폐허

 예리코(Jericho)의 남쪽 12km, 사해 서북 연안에서 1.3km, 사해 수면에서 약 300m 높이에 위치한

쿰란 폐허는 1951년부터 5차에 걸쳐(1951, 1953, 1954, 1955, 1956년)

드보(Roland de Vaux)와 하딩(G.L. Harding)에 의해 처음으로 조직적 발굴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건물내를 종횡으로 달리고 있는 수로(水路), 몇 개의 저수지가 달린

수도원풍의 커다란 석조건물의 윤곽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 석조건물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고, 그중의 큰 방 하나는 사경실(寫經室)이다.

그리고 집회실 또는 식당으로 보이는 넓은 방, 약 1,000개의 식기류가 저장되어 있는 방,

다수의 화폐도 발견되었고, 부근에는 1,100개의 묘가 있는 묘지가 위치하고 있다.

이 주거지(住居址)는 기원전 100년경에 건립되고,

제1차 유대반란(67-70년) 때 파괴되었다고, 드보는 결론지었다.

 

쿰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쿰란폐허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있는 쿰란 유적지 출토품

 

쿰란사본이 발견된 동굴

 

쿰란사본 (사해문서)

 1947년 초여름, 무리에서 떨어져 사해가 내려다보이는 벼랑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한 마리 산양을 쫓고 있던

베두인족(族) 양치기 소년에 의해 한 동굴(쿰란동굴 1)에서

오래된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두루마리 등의 문서가 발견되었다.

 

쿰란 유적지

쿰란유적지에서 본 사해

 

유적지 뒷편의 계곡

이곳에서는 사해에서 생산되는 비누를 비롯한 화장품과

이스라엘 특산품을 판매하는 면세점이 있어

질좋은 상품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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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입국하여 예수님께서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는 도시 예리코에서 하룻밤을 지내다.

이스라엘에 들어오자 사람도 많이 보이고 활기가 넘친다.

해저 300m 인 에리코의 밤낮 풍경

에리코 리조트호텔과 일출

엘리사가 쓴물을 단물로 바꾸었다는 엘리사의 샘은 예리코 성 밑에 있으며 엄청난 양 (분당 약 5t) 의

물이 솟아 예리코 평야를 적셔 준다.

예수님이 악마에게 유혹을 받았다는 유혹산-- 산 중턱에 수도원이 있다.

예수님이 지나 가시는 것을 보기 위해 키작은 자캐오가 올라 갔다는 나무

 

베드로 고기를 양식하는 양어장이 곳곳에 있다.

 

 

소금물의 농도가 짙어 익사자가 없는 사해

 사해의 칼리아(Kalia) 사해는 해발 -427m에 위치한 바다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사해는 길이 55㎞, 폭 18㎞이며,

 평균 수심 118m, 가장 깊은 곳은 377m에 이른다.

북쪽의 요단강에서 물이 흘러들어오는데, 물이 흘러나가는 곳이 없어 염도는 계속 높아지고

수량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 언젠가 사해는 소금밭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도로로 부터 500m쯤 걸어 내려가야 사해에서 메드마사지와 수영을 할수 있다.

해수욕장처럼 주변에 방갈로도 만들어놓고 파라솔도 설치되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해발 -418m 지점에 있다는 바(Bar)의 영문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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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땅인  시나이 반도의 홍해를 낀 아름다운 해변은

휴양지로 잘 가꾸어져 있다.

 

차창 사진들.........

점심식사를 한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해변들.......

 

검문소인듯.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국경도시

이스라엘에서 본 이집트 입국로.

이집트 국경에서 걸어서 이스라엘 입국해 한참 대기한 후 까다로운 검문 후 입국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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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성지순례여행의  백미 중 하나는

시나이산에 올라 일출을 보는 것이라고도 할수 있다.

새벽 2시에 투숙호텔을 나서 약 4시간의 바위산 산행을 하고 나면

시나이산 정상에서 황홀한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서편 하늘에 보름달이 걸려있는 시나이산 정상부근 --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참례객이 정상으로 오른다.

 

정상의 기념당에서 일출을 감상하는 순례객들

일출 후 다시 바라본 시나이 산 정상

정상에서 본 아래의 베두인들의 영업장 -- 종교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고 간단한 요기도 할수 있다.

 

정상에서 본 시나이산 전경.

 

시나이산 상인들에게 물품을 나르는 나귀.

엘리아가  피신했다는 엘리아의 집

대체적으로 붉은 색을 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시나이산의 모습.

 

등산로 중간 중간에 베두인들의 거주지가 있다.

 

성 카타리나 남자수도원 윗쪽에 있는 낙타와 나귀의 주인들의 주거지.

 

모세의 불에타지 않은 떨기나무의 전승이 전해지는 성 카타리나 수도원

이슬람의 공격에 대비해 튼튼한 성곽을 쌓고 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시나이산의 성카타리나 남자 수도원

 

요새화 된 수도원 밖의 관광객 수송용 난타.

 

 

 

 

시나이 반도의 황량한 풍경과 길가의 베두인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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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 반도를 가로질러 이스라엘로 가는 길목에

탈출기 17장 기사에 나오는

목말라 하느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가 홍해 물을 갈랐던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해갈시켰고,

아멜렉과 싸움에서 지팡이를 치켜들어 승리를 이끌었던

르비담을 지나가게 되었다. 

 

시나이 반도 르비담 가는 길의 독특한 지형과 지질의 황무지 모습들

 

르비담에 가까워지자 아자수를 비롯한 초목들이 있었으나 비가 적게 내리는 탓에 고사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지팡이를 든 손을 쳐들어 승리했다는 곳에 쌓은 돌제단

 

두터운 이암(진흙으로 된 바위) 아래 형성됭어 있는 마을 모습이 이채롭다.

 

시나이산으로 가는 길목의 계곡.

 

시나이산 아래 있는 콘도식 호텔 -- 시나이산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2시에 호텔을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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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가자 지역 피라미드 pyramid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 왕들의 무덤으로  4,000~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일 강 주변에는 지금도 80여 개나 되는 피라미드가 남아 있다. 

피라미드는 많은 돌을 쌓아올려 만들었는데, 밑면은 동서남북을 향하는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져 맨 위는 뾰족하다.  

북쪽에 있는 입구를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긴 복도를 지나

왕이나 왕비의 시체를 안치한 방에 이르게 된다.  

시체는 썩지 않도록 미라로 만들었으며, 많은 부장품으로 보물도 함께 들어 있다.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것은 카이로 서쪽, 기제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이다.

이 피라미드는 밑변의 한 변이 227m, 높이가 약 146m이며,

평균 2.5톤이나 되는 큰 돌을 230만 개 가량 쌓아올렸는데 전체 무게가 684만톤에 이른다.

이 피라미드는 돌을 운반하는 길을 만드는 데 10년, 지하실을 만드는 데 10년,

피라미드를 쌓는 데 2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엄청난 규모의 쿠푸왕의 피라미드

 

피라미드 내부 출입구

 

피라미드 건설 당시 사무실이었거나 신전이었던 건물

 

카프라왕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회칠로 마무리 한 것이 남아 있다.

왕묘로 만들어진 이집트 기제의 3대 피라미드. 왼쪽부터 쿠푸 왕, 카프레 왕, 멘카우레 왕의 것이다.

 

 

스핑크스 sphinx

 그리스 전설에 고대 그리스 보이오티아의 테베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스핑크스 수수께끼’ 이야기가 전해진다.

날개달린 괴물 스핑크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틀린 답을 말하면 잡아먹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맞히자 스핑크스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미술품으로서 최초이자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유명한 스핑크스는

이집트 기자에 있는 카프레 왕 피라미드 앞에 있는 거대한 와상(臥像) 스핑크스로, 

 스핑크스의 얼굴은 카프레 왕의 초상으로

카프레 왕(제4왕조의 제4대 왕, BC 2575경~2465경)의 재위기간에 만든 것이다.

 거대한 석회암 바위를 깎아 만들었으며 길이는 약 73m, 높이는 20m이다.

스핑크스를 관람하기 위해 지하 신전으로 들어가야 한다.

죄수를 가두었다는 지하실.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 피라미드가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정면에 스핑크스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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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계곡 발굴 책임자였던 영국인의 숙소와 사무실

 

이집트 룩소르 합셉수트 장제전

일명 델 엘 바하리 (강변의 수도원)라 불리는 이곳은,  

BC1504년 합셉수트가 이복아들인 투트모스3세가 7세에 왕이 되었을 때, 왕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여왕이 되고 본인을 위하여 지어진 장제전 신전이다.

이 신전을 세운 이유는 그녀가 여자이고 또 왕이 투트모스3세가 있는데도 굳이 자기가 파라오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 주장과 그녀의 보모을 신성시하여 경배하고 아몬신을 경배하기 위하여 지었다.


   이 신전은 당시 이름난 건축가“세넴무트”가 지었는데 신전 뒤쪽의 수직 절벽의 지형을 따라 3층의 테라스 모양으로 지어 올라갔다.
  

3층의 테라스기둥에 합셉수트여왕이 오시리스모양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
   2층 부분의 벽면에는 합셋수트여왕이 신하들과 병사들을 데리고 푼트지역(지금의 소말리아)을 방문하여,

서로 인사하고 교역하고 그 곳의 헨나나무(향유나무)의 묘목을 배로 실어와

이집트 땅에 심어 키운 후 향유를 신에게 바치는 여행기록문이 남아 있다.


   2층의 왼쪽 신전은 하토르여신을 위하여, 오른쪽은 아누비스신을 위한 신전이 있다.

   투트모스3세가 합셉수트여왕이 죽은 후 7일 동안 신전을 완전히 파괴하였는데

신전의 벽면에 합셋수트왕의 이름표(카르투쉬)를 지우고 얼굴을 쪼아버렸다.

파괴된 돌조각의 그림을 보고 지금부터 40년간 폴랜드 고고학자에 의하여 재복원되었다. 
   
   신전의 동쪽은 나일강과 주변의 녹지대가 보이고, 멀리 정면으로 카르낙 신전을 마주하고 있다.


   신전의 뒤쪽은 약 70-100m 높이의 수직절벽이 신전을 감싸듯이 보호하고 있어 지형 특성상 이집트 최고 명당자리이기도 하다.
  

이집트 건축학적으로 걸작으로 꼽히며 나폴레옹의 학자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관심과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97년 11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테러에 의하여 관광객 69명이 죽은 곳이다.

합셉수트 장제원의 부속 건물

 

장제원 출입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벽돌문

 

합셉수트 장제원은 약 70-100m 높이의 수직절벽이 신전을 감싸듯이 보호하고 있어 지형 특성상 이집트 최고 명당자리.

장제원 뜰에서 바라본 룩소르 서쪽 풍경 -- 카르낙신전과 일직선상에 있다.

허물어진 신전에서 나온 돌멩이들....

 

신전 건축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거처로 추정되는 동굴들.

 

장제전의 파괴된 거대한 돌기둥들과 조각작품들

 

장제전 2층 벽면의 채색 벽화들

"왕가의 계곡"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비행기로 50분, 직선거리로 약 500km 떨어진 곳에 유명한 관광지 룩소르가 있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 테베의 남쪽 교외에 해당한다.

이곳에는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두 강가에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동쪽 강가에는 카르나크 신전과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한 룩소르 신전 등이 있고,

건너편 서쪽 강가에는 왕족과 고관들의 암굴묘, 그리고 여러왕의 장제전(장례와 제사를 지내는 장소)등이 남아 있다.

나일강 서안 지역은 해가 지는 땅으로 사후 세계와 이어져 있다고 해서 '네크로폴리스(죽은 자의 거리)테베'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왕가의 계곡'은 나일강 서안의 메마른 계곡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황량한 이 땅은 아멘호테프 4세가 중부 이집트의 텔엘아마르나에 천도해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

신왕국 제 18왕조(기원전 1400년경)투트메스 1시에서 제 20왕조 람세스 11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왕의 암굴묘가 있는 곳이다.

 

 이 땅에 왕묘를 세운 것은 도굴을 피하기 위하여 매장한 묘를 숨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또 상부에는 표고 450m의 알쿠른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어서 피라미드 형상을 한 산의 외관이 왕묘를 세우는 데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태양이 지는 나일강 서안 중에서도, 죽은 왕의 매장지로서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에는 '타이네트(골짜기)', '타세트아아트(위대한 장소)'등의 이름으로 불린 이 골짜기는,

지금은 '와디알무르크(왕들의 계곡)'라 불리고 있다. 왕가의 계곡은 동서로 갈라져 있는데,

지금까지 약 60개의 묘와 20여개의 피트(지면에서 곧게 내리 판 굴), 즉, 수혈이나 굴착한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1922년 11월에 카터(H. Carter:1873~1939)가 투탕카멘(Tutankhamen)왕묘(KV62)를 발견하고 난 이후 새로운 왕묘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미국의 고고학자 위크스(K.Weeks)에 의해 람세스 2세의 왕자들의 묘(KV5)의 재발견과 람세스 2세의 묘.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왕묘에 대한 재조사가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

피라미드 형상을 한 해발 450m의 알쿠른 바위산의 외관이 왕묘를 세우는 데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왕가의 계곡 출입구

 

멤논의 거상

원래 이곳은 제 18왕조인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의 신전으로

자연과 고대 여행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는 신전을 지키는 2개의 거상만 남아있다.

멤논의 거상은 19.5m 높이의 거상으로 멤논(Memn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오스(Eos)와 티토노스 (Tithonus)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에티오피아의 왕으로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도우러 갔다가 그리스군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이 상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났는데,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멤논 왕이 그의 어머니 이오스에게 인사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2개의 거상 중 하나가 멤논과 닮았다고 하여 멤논의 거상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아가멤논과는 다른 인물.

북쪽의 입상은 아멘호텝의 어머니 무테무이아와 여왕 티이의 입상이 있었으나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붕괴된 유적에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음악소리가 났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집트인들은 이 소리가 신이 전하는 소리라고 믿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 AD 130년 하드리안 황제를 포함해서 멀리서 많은 방문자들이 방문을 했는데,

이 상이 로마인들에 의해 AD 199년 수리되면서 멈췄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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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카르낙 신전 -- 차창 사진

 

 

카르낙 신전의 입구 -- 야간 관람이라 사진 화질이 좋지 않음

하나 밖에 없는 오벨리스크 -- 오른쪽에 있던 것은 프랑스 파리 국회의사당 앞 콩코드 광장에 옮겨져 있다.

 

입구의 람세스 2세의 석상

머리와 상반 부분이 훼손된 파라오 석상들과 파괴된 석주들

 

 

복원시킨 벽의 부조작품.

 

거대한 돌기둥들의 행렬

 

 

신전보다 10여m가 놀은 땅위에 세워진 이슬람사원

 

 

Posted by Theo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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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00년경 이집트의 수도였던 룩소르(당시 테베)!

나일강이 룩소르를  동안과 서안으로 나눠 구분하고 있다.

나일강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라 하여 살아있는 사람들과 신들의 공간으로 신전이 있고,

해가 지는 서쪽은 죽은 망자의 공간으로 무덤이나 장례를 치르던 장례신전이 있다.

 

이집트 룩소르 신전

룩소르에는 카르나크 신전과 연결된 룩소르 신전이 있다.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  간 3km거리에는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가 두 줄로 서 있다.

고고학자들은 대략 370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다고 추측하지만, 현재는 58개만 남아 있다.

 

 

룩소르 신전 앞의 야자수 그늘이 시원한 넓은 광장과 주차장

신전 들어가는 넓은 길  양쪽에는 숫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세로 43m, 가로 130m나 되는 이집트에서 가장 큰 룩소르 신전의 제1탑문까지 늘어서 있다.

 

 

제1탑문 안쪽 광장의 신전의 완성을 본 람세스 2세의 석상.

파라오들이 자신의 석상 옆에 부인의 모습을 새기더라도 무릎선을 넘지 않았는데,

람세스 2세는 그 불문율을 깨고 왕비 네파르타리를 무릎위까지 오게 했다.

불문율까지 깰 수 있었던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남자의 여자였던 네파르타리는 과연 행복했을까?

제1탑문 안 광장의 열주와 양머리 스핑크스, 그리고 파라오거나 신들의 석상

탑문 안 광장에서 바라본 제1탑문 입구와 그 맞은 편 아문라 신전의 대열주실 입구

제2탑문 안쪽 가로 100m 세로 50m 공간에 134개의 원형기둥이 늘어선 아문라 신전의 대열주실.

높이 20m  지름 2m가 넘으며 채색 상형문자가 빽빽이 새겨진 이 커다란 기둥 앞에 서있는 인간이 참으로 작게 느껴진다. 

투트모스1세가 제4탑문 앞에 오벨리스크 한쌍, 이어 하쳅수트나 투트모스 3세도 오벨리스크를 1쌍씩 세웠는데

현재는 투트모스1세가 세운 것 하나와 하쳅수트가 세운 것 하나 씩만 남아있다.

투트모스 1세 오벨리스크 하나는 터키 이스탄불에 가 있고,

하쳅수트 오벨리스크는 신성한 호수 부근에 파괴되어 누워있고, 투트모스3세 것은 알 수 없다.

 

독특한 형태의 석질도 다른 돌기둥도 눈에 띈다.

 

삭막한 사막같은 신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신성한 호수'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

파라오와 신들의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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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한 다음날,

중형 국내선 비행기로 룩소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버스로 이집트 문명의 보고인 룩소르에 가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황량한 황무지와 룩소르 국제공항.

날고 작은 중형 비행기로 룩소르에 도착하다.

룩소르 공항 인근의 시가지 풍경

 

버스에선 본 시골의 낡은 아파트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과일 상인의 나귀 마차.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망루의 경비병.

 

아스완 부근의 나일강 횡단 교량과 나일강 크루즈여행 기항지.

룩소르 장제전 부근의 풍경

 

파라오들의 지하 무덤이 많이 있는 왕가의 계곡 뒷편의 산

 --산세가 삼각형의 피라미드 형태를 이루고 있다.

 

 

미사를 봉헌한 룩소르에 있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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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성지순례 여행--카타르 ->이집트

카타르 도하에서 이집트 카이로 행 비행기로 환승한 후

아라비아 반도와 시나이 빈도를 건너 가면서

비행기에서 바라본 풍경들.....

사사막 한 가운데 보이는 정체불명의 원형 무늬들.

황량한 사막의 모래지대와 수풀이 무성한 곳의 경계지역

 

아무리 사막이라도 해안가에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시나이 반도 왼쪽 홍해의 어느 해안이라고 추측됨.

.

사막의 절벽 지대와 오랜 세월 동안의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

드넓게 펼쳐진 불모지인 황야에도 자연의 힘에 의해 아름다운 경관이 연출되고 있다.

곳곳에는 지금도 연기가 나는 화산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소규모의 피라미드도 여기저기 보이고.......

카이로 시가지의 모습 --강은 아마도 나일강의 지류 중 하나 일게다.

 

카이로국제공항과 공항의 일몰

 

마타리야 콥트 정교회의 아기 예수 피난 성당

헤로데의 아기들 학살을 피해 아기 예수 일행이 이집트에 올 때와 이스라엘로 갈 때 두차례 들렸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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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성지순례여행 --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2010년 3월 29일부터 4월 10일까지(13일 간)

평화방송 여행사와 라파엘 여행사가 주관하는

이집트의 카이로와 룩소르, 이스라엘 전역과 시나이반도 ,요르단 페트라를

순례하는 여행을 다녀온 사진들이다.

 

출입국 장소인 인천공항과 이용 항공편인 카타르 항공기

 

행기에서 본 사막 위에 이루어진 카타르  도하와 도하국제공항

 

 

사막 위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현대도시인 카타르 수도 도하

카타르 항공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이집트 카이로 연결 편을 타기 위해

도하에서 8시간 쯤 대기 시간에 시내 관광을 하였다.

 

도심에는 여러 형태의 현대적인 특색있는 건물들이 속속 건축되어 있고

바다를 간척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카타르는 아라비아 반도 페르시아만 연안에 위치하여

수도 도하는 한창 바다를 메워 새로운 도시를 건설 중이다.

낙타 시장(?)

거리의 과일가게

 

도하 아시안게임 주경기장과 상징탑, 기념 조각작품

도하 중심가의 고급 주택과 이슬람 사원

 

경마장과 물속에서 훈련시키는 말

 

중동 아랍계의 유명한  알자지라 방송국

 

유명한 미술관 (?)

 

해안도로 옆의 상징 조각작품들.

 

 

카타르 국회의사당 (?)

타타르 국왕과 각료들이 근무하는 행정기관 건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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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찢기고 있는 조물주의 빼어난 창의력으로 창조된 자연풍광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모습 그대로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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