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새겨진 장밋빛 도시 페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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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가파른 협곡에 묻힌 채 긴 세월 잊혔던 고대 도시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 태생의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역사의 망각에서 깨어났다

거기에는 장밋빛 사암을 뚫고 8킬로미터에 걸쳐 건설된 수많은 

주거지와 무덤 · 극장 · 신전 · 목욕탕 · 극장 · 장터가 있었다.


모세의 형 아론이 이집트를 탈출하면서 죽은 자리에 만들어진 묘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부르크하르트는 

일행의 대장에게 자신도 아론의 묘를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대장의 허락을 받아 그는 험한 협곡을 지나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붉은빛 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도시가  눈앞에 펼쳐져 그는 붉은 장밋빛 도시의 

발견자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붉은 사암을 뚫고 건설된 페트라

사해와 아카바만(灣) 중간에 위치한 페트라는 기원전 400년경에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 나바테아인의 종교적 중심지이자 수도였다.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인들은 고대 사회에서 인기가 높았던 

알로에 · 계피 · 유향 등을 남아라비아와 인도에서 지중해 지역으로 운반했고

 기원전 4세기부터 전설적인 유향로(乳香路)의 북부를 장악할 정도로 그 세력이 컸다. 

척박한 지역이었지만 물이 있는 장소를 알고 

사막의 모래바람을 피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해발 950미터에 위치한 은닉처 페트라는 그 주위로 높고 가파른 암벽들이 

어두운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어서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했다. 

로마도 무력으로는 페트라(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를 정복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2세기 초 페트라의 로마 합병에 대해 학자들은 

로마가 페트라를 정복한 게 아니라 페트라가 합병을 정략적인 이용으로 추정한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좁은 협곡 시크(Siq)는 도시로 진입하는 통로로, 

밖에서는 그 입구가 잘 보이지 않으며 입구부터 높이 100미터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사암 절벽이 1킬로미터나 좁은 길을 덮칠 듯이 이어져 있고 

페트라는 이러한 길을 지나야 나온다. 

도시 길이는 8킬로미터에 달하며 시가지 입구는 동쪽의 시크, 

남쪽의 투그라, 북쪽의 투르크 마니에라라는 세 개의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바테아인들은 지중해 연안까지 여러 대상로를 장악했는데 

 모세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 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면서 지났다고 하는 ‘왕의 길’도 있다. 

대상들은 페트라를 통해 이집트의 기자 · 지중해 · 시리아 등으로 여행할 수 있었기 때문에 

페트라 도시민들은 통행요금 징수와 아스팔트 무역의 수입으로 아주 부유했다.

페트라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누렸는데 

당시 페트라의 인구는 3만 명을 넘었다. 

페트라는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포장도로 · 목욕탕 · 상점 · 극장 · 장터 · 궁전 · 체육관

 · 계단식 정원 · 테라코타로 만든 정교한 배수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다.

페트라에서는 골짜기가 워낙 좁아 큰 규모의 건물을 세울 수 없어서 

도시민들은 그들이 받들던 신 · 망자들과 함께 바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파거나 조각하기 쉬운 사암을 깎아 무덤과 주거지를 만든 것이다. 

 현재까지 페트라에서는 800개의 주거지와 무덤이 발견되었다.

106년 로마에 정복된 후 페트라도 기독교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쇠락의 길을 피하지 못했는데 다른 대상 무역로가 발견되어 

기원 3세기부터 그 중요성을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매표소에서 1km쯤 떨어진 시크 (페트라 계곡의 동쪽 입구)까지의 

비포장 도로 양쪽에는 모양을 다듬고 동굴을 판 사암들이 많이 있다.

걷거나 말을 타고 관광할 수 있다




페트라 동쪽 입구인 시크 부근 ---관광안내소와 경찰사무소가 있다.



시크의 입구 모습---문을 달았던 석조물의 흔적이 남아있다.

시크에서 신전이자 무덤인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파라오의 보물)까지는 걷거나 마차와 낙타관광을 할 수 있다.



문을 달았던 흔적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파라오의 보물)

페트라의 수많은 건축물과 조각 중에서도 단연 방문객들을 감탄케 하는 것은 

장밋빛 사암을 깎아 만든 신전이자 무덤인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파라오의 보물)이다. 

이 기념비적인 건물은 시크를 통과하자마자 나타난다. 

높이 40미터, 너비 28미터의 정면 모습은 웅장하고 예술적으로도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이 건축물은 헬레니즘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건축 전통을 따르고 있다.

앞에 넓은 광장을 거느리고 있는 카즈네피라움의 정면 모습은 

기둥과 지붕, 여러 조각상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정면 중앙에는 대좌가 있고 그 위에 항아리가 있는데 

베두인들은 그 안에 파라오의 보물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고고학자들은  나바테아왕 하리스 4세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최근에는 영화 '인디아니존스/마지막성배'촬영장소로 유명해졌다.




보석같은 사암 내부를 파서 만든 무덤의 외형과 내부모습




반원형 야외극장

2세기 초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하고 로마인들이 확충한 

너비 40미터의, 33개 계단으로 된 극장 유적은 

바위산을 반쯤 깎아 움푹하게 만든 건축물로 약 6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극장 왼쪽에 있는 로마시대의 시가지에는 열주대로가 뻗어 있고 

왕궁 · 신전 · 공공욕장 등의 유적이 있다.

그리스나 로마의 도시국가에서는 주민의 10%를 수용할수 있는

야외극장을 건설하는데 극장의 규모로 주민 수를 추정할 수 있다


Posted by Theo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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