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라오디케아 ,콜로세


라오디케아

 

현재 ALAHSEHIR로 불리는 라오디게아는 예전에는 에페소와 수리아의 중간에

 위치하여 에게해에서 아시아의 중심으로 뻗어나간 로마의 길이 관통하는 도시로, 

파묵깔레에서 서쪽으로 6.5km,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72km, 

에페소에서 남동쪽으로 160km정도 떨어진 

교통의 요지인 리커스 계곡에 위치하여 최고의 상업도시로 발전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는 몇번의 대지진을 격었는데,  

AD 17년 대지진으로 라오디게아가 모두 파괴되자 로마에서 도와주고자 했지만 

라오디게아는 이를 거절하고 순수 라오디게아인들의 힘만으로 도시를 재건했다. 

이 정도로 라오디게아는 엄청난 부를 갖춘 도시였다. 
이런 부의 근본이 된 것은 물론 무역과 통신이었지만 

기간 산업인 양모와 목화 또한 주축이 되었다. 

이 지역의 양모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 양모로서 가격이 높았으며 인기가 좋았다. 

이들의 부는 로마의 키케로가 거액의 신용장을 라오디게아에서 현금화 했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라오디게아는 의학이 발전했었다. 

이 곳의 눈병 치료약은 매우 뛰어나서 많은 이들이 찾았는데

 "브루기아가루'라 불린 이 안약 때문에 

라오디게아는 의료 도시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발전한 의학은 유명한 의학교가 뒷받침을 해 줬으며 

치료의 신 멘카루의 신전 주위에서 거의 모든 약품둘이 거래 되었다. 

이렇듯 엄청난 부를 가진 라디오게아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다. 

그래서 종교적 핍박이 그렇게 심하지도 않고 

경제적 궁핍도 없는 상황에서 포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렇듯 경제적인 부유함은 사람들에게 교회와 하느님을 간구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해 하느님에게 덥지도 차지도 않다하여 질타 받게 된다. 

이 질타는 라오디게아에서 6.5KM 정도 떨어진 히에라볼리에서 

온천수를 수로로 가져오면서 식은 미지근한 물에 비유하여 

오디게아인들을 질타했다고도 풀이된다. 

이렇듯 부유했던 라오디게아는 몇 차례의 대규모 지진으로 

현재의 유적지도 모두 땅속으로 함몰되어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이

 돌로 포장된 곧은 길과 시가지 건물들의 잔해,

교회 터로 볼 수 있는 유적 하나와 야외극장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라오디케아 유적 안내판과 유적지 입구


<유적지의 중앙도로 마차바퀴에 의해 바위가 움푹 파인 자국이 선명하다>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유적 복원작업 중이나 진척이 별로 없단다.>





철저하게 파괴되어 돌기둥들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폐허 뿐인 라디오케아



<성당터 임을 증명하는 십자가가 새겨진 바위와 제단> 


<규모는 크나 거의 허물어진 원형극장>




                                                             로세

소아시아의 부르기아 서남쪽에 있던 성읍. 라오디케아, 히에라폴리스와 함께 

소아시아에서 시리아로 가는 동서 교통의 요지로, 한때 번영을 누렸으나 

신약시대에는 쇠퇴하였다.

바오로의 제자이자 동역자인 에파프라스가 골로새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후 몇차례의 대지진으로 도시 자체가 완전히 함몰되어

 지금은 흙이 쌓인 언덕에 유적지 안내판만 세워져 있다. 





지진의 흔적과 이름모를 식물의 꽃이 순례자들을 반긴다





현재의 콜로세 유적지 부근의 풍경 -- 제법 큰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14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히에라폴리스 [ Hierapolis ]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3세기에는 시리아 왕의 지배에 있었으나

 기원전 2세기 말에는 버가모 왕국의 지배에 있었다.

 이 도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번창해나가다가 

기원후 50년에 대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었만 네로 황제때 재건되었다. 

당시 히에라폴리스는 치료 휴양의 도시이자 상업의 도시였다.

히에라폴리스 도시는 한때 인구가 8만명에 이르렀으나 

계속되는 지진, 아랍인의 침입, 셀주크 터키 군과 비잔틴 제국 군대 간의

 전장이 되는 바람에 급격히 황폐해졌으며 

12세기 이래 폐허로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시작된 발굴 작업으로 히에라폴리스 폐허는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히에라폴리스에는 2세기경에 건축된 1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극장과 온탕과 냉탕을 갖춘 로마 목욕탕이 있다. 

현재는 로마 목욕탕의 일부가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성문 밖 북쪽 1km 지점에 1200개에 달하는 석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히헤라폴리스의 옛모습을 복원한 조감도와  출입구



 <히에라폴리스의 성곽과 성문>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옆에서 본 원형극장


원형극장 무대 뒷편에서 본 풍경들
 



사도필립이 순교한 히에라폴리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름을 받은 필립(Philip-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은 영적으로 우둔하여 실수도 많이 하였으나,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필립은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하여 아래 사진의 무덤에 묻혔다고 한다


<성 필립의 무덤>
 









냉온탕 시설을 갖추었던 로마식 목욕탕을 개조하여 만든 히에라폴리스박물관








화려했던 옛도시가 처절하게 파괴되어 황량한 페허 위에 5개의 석주만 남아있다.



지금은 잡초와 야생화의 보금자리가 된 모습이 안스럽다. 









박물관 앞의 폐허가 된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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