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터키,그리스 성지순례 

  -- 성지순례여행의 시작 출국, 이스탄불


14박 15일('14/06/02 - 06/16)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수도회)

김성태 (토마) 신부님이 인솔하는

성지대표부 28차 성지순례단 32명이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여행길에 오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지상 모습이 신기할 때가 많다.



중동지방 사막지대인 모양









이스탄불 상공 -흰벽에 붉은지붕의 터키건물의 특징을 볼수 있다.





터키에서 성지순례단이 타고다닐 관광버스와 이스탄불에서 묵은 호텔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이슬람 사원 

-- 국민 98%가 이슬람교인인 터키에는  사원이 공동체의 중심이다.>



바오로의 탄생지 타르소스를 가기 위해 국내선 항공기를 타다.




해발 3000m를 넘는 타우루스(황소) 산맥의 만년설



비행기에서 본 터키의 어느 도시와 산지와 평야





가로가 잘 정비된 어느 도시의 
도로



<우리나라 포항처럼 철강도시인 이스켄데른시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어있다.>



 이슬람 사원이 마을의 중심이다.o


'14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라오디케아 ,콜로세


라오디케아

 

현재 ALAHSEHIR로 불리는 라오디게아는 예전에는 에페소와 수리아의 중간에

 위치하여 에게해에서 아시아의 중심으로 뻗어나간 로마의 길이 관통하는 도시로, 

파묵깔레에서 서쪽으로 6.5km,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72km, 

에페소에서 남동쪽으로 160km정도 떨어진 

교통의 요지인 리커스 계곡에 위치하여 최고의 상업도시로 발전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는 몇번의 대지진을 격었는데,  

AD 17년 대지진으로 라오디게아가 모두 파괴되자 로마에서 도와주고자 했지만 

라오디게아는 이를 거절하고 순수 라오디게아인들의 힘만으로 도시를 재건했다. 

이 정도로 라오디게아는 엄청난 부를 갖춘 도시였다. 
이런 부의 근본이 된 것은 물론 무역과 통신이었지만 

기간 산업인 양모와 목화 또한 주축이 되었다. 

이 지역의 양모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 양모로서 가격이 높았으며 인기가 좋았다. 

이들의 부는 로마의 키케로가 거액의 신용장을 라오디게아에서 현금화 했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라오디게아는 의학이 발전했었다. 

이 곳의 눈병 치료약은 매우 뛰어나서 많은 이들이 찾았는데

 "브루기아가루'라 불린 이 안약 때문에 

라오디게아는 의료 도시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발전한 의학은 유명한 의학교가 뒷받침을 해 줬으며 

치료의 신 멘카루의 신전 주위에서 거의 모든 약품둘이 거래 되었다. 

이렇듯 엄청난 부를 가진 라디오게아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다. 

그래서 종교적 핍박이 그렇게 심하지도 않고 

경제적 궁핍도 없는 상황에서 포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렇듯 경제적인 부유함은 사람들에게 교회와 하느님을 간구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해 하느님에게 덥지도 차지도 않다하여 질타 받게 된다. 

이 질타는 라오디게아에서 6.5KM 정도 떨어진 히에라볼리에서 

온천수를 수로로 가져오면서 식은 미지근한 물에 비유하여 

오디게아인들을 질타했다고도 풀이된다. 

이렇듯 부유했던 라오디게아는 몇 차례의 대규모 지진으로 

현재의 유적지도 모두 땅속으로 함몰되어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이

 돌로 포장된 곧은 길과 시가지 건물들의 잔해,

교회 터로 볼 수 있는 유적 하나와 야외극장 하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라오디케아 유적 안내판과 유적지 입구


<유적지의 중앙도로 마차바퀴에 의해 바위가 움푹 파인 자국이 선명하다>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유적 복원작업 중이나 진척이 별로 없단다.>





철저하게 파괴되어 돌기둥들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폐허 뿐인 라디오케아



<성당터 임을 증명하는 십자가가 새겨진 바위와 제단> 


<규모는 크나 거의 허물어진 원형극장>




                                                             로세

소아시아의 부르기아 서남쪽에 있던 성읍. 라오디케아, 히에라폴리스와 함께 

소아시아에서 시리아로 가는 동서 교통의 요지로, 한때 번영을 누렸으나 

신약시대에는 쇠퇴하였다.

바오로의 제자이자 동역자인 에파프라스가 골로새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후 몇차례의 대지진으로 도시 자체가 완전히 함몰되어

 지금은 흙이 쌓인 언덕에 유적지 안내판만 세워져 있다. 





지진의 흔적과 이름모를 식물의 꽃이 순례자들을 반긴다





현재의 콜로세 유적지 부근의 풍경 -- 제법 큰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2014 터키,그리스 성지순례여행(4) --카파도키아​ 



카파토키아는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터키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활화산이었던 예르지예스산(3917m)이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오랜세월에 걸친

 풍화, 침식작용으로 부드럽고 쉽게 깍이는 응회암 지대로 바뀌었다.

지하도시인 데린구유와 같이 쉽게 노출되지 않아 종교탄압시기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대표적인 버섯 바위와 기암속에 숨은 기독교 벽화들, 수십미터씩 파내려간
지하 도시등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노천 그 자체가 작품이다.

경기도 만큼 넓은 면적 전체에 볼거리가 흩어져 있어  

짧은 시간에 곳곳을  다 볼 수는  없어, 

열기구를 타고 높은곳으로 올라가 내려다 보는 투어가 있는데 

날씨 관계로 투어가 취소되어 못내 아쉬웠다.

 

아나톨리아 고원의 중심부에 자리한 대규모 기암지대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신비스럽고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불가사의한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이 곳은 1985년 세계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산 중턱에 옛 교회의 잔재가 흩어져 있는가운데 이슬람 사원이 있다>



 이튿날 새벽 열기구를 타려고 했으나 기상악화로 기회를 놓친 아쉬움

열기구 타러 가는 길에 촬영한 차창 사진













<산세 자체가 오묘하여 신비스럽다.> 

기묘한 풍경이 경이로워  차 안에서 연신 셔터를 눌렀다.  


 괴레메에서 하룻밤을 숙식한 카파도키아 라마다 호텔>


커다란 바위를 파서 만든 암굴식당 출입구와 내부

---<암굴식당에서 맛있는 점심과 와인을 먹으니 분위기가 좋았다.>


 차로 이동하면서 감상한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들......

차에서 내려 경이로운 모습에 넋을 놓고 촬영하다.

3위일체 바위 

풍화가 심한 아래 응회암에 비해 단단한 의 현무암이 마모되지 않아 마치 버섯처럼 생겼다. 

토끼 바위

​<육영수 여사 바위(?)>


괴레매 전망대에서 바라본 카파도키아

이튿날 새벽 열기구를 타려고 했으나 기상악화로 기회를 놓친 아쉬움





열기구 타러 가는 길에 촬영한 차창 사진




흰색 이암이 풍화작요으로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적을 피해 주거지를 높은 바위산에 암굴을 파고 살았던 흔적들이 수 많다.



' 14 터키,그리스 성지순례여행의 시작


14박 15일('14/06/02 - 06/16)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수도회)

김성태 (토마) 신부님이 인솔하는

성지대표부 28차 성지순례단 32명이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여행길에 오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지상 모습이 신기할 때가 많다.


비행기에서 본 신비로운 지구의 모습


순례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이스탄불의 호텔과 터키에서 이용한 관광버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이슬람 사원 

-- 국민 98%가 이슬람교인인 터키에는  사원이 공동체의 중심이다.>


이스탄불 국제공항 -- 바오로의 탄생지 타르소스를 가기 위해 국내선 항공기를 타다.

해발 3000m를 넘는 타우루스(황소라는 뜻) 산맥의 만년설


비행기에서 본 터키의 어느 도시와 산지와 평야


가로가 잘 정비된 어느 도시의 도로

<우리나라 포항처럼 철강도시인 이스켄데른시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어있다.>

터키의 모든 마을은  이슬람 사원이 마을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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