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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사 생가

Theodor 2022. 3. 10. 21:55

울산광역시 북구 박상진길 23에 위치한  생가는

독립운동가 박상진(1884 (?) ~1921)의사가 살았던 곳이다.

박상진의사는 1902년 허위(許蔿)선생에게 한학을 배운 후

양정의숙에 진학하여 법률과 경제를 전공하고,

판사 시험에 합격하여 평양법원에 발령되었으나 사퇴했다.

 

그 후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1915년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 결성에 앞장섰다

. 박상진의사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력으로 독립을 달성할 목적으로

대한광복회 총사령을 맡아 활동하였다.

1918년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오는 길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1921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이후 정부에서는 국권회복과 항일투쟁에 앞장선 공로를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대지주였던 박상진의사는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여 집안은 몰락하였고,

이 집도 남의 손에 넘어갔으나

2002년 울산시가 매입하여 2007년 복원 정비 사업을 마쳤다.

 

생가는 사랑채, 안채 등 모두 6동의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

전체적으로 보면 ‘ㅂ’자형 구조의 조선 후기 양반 살림집이다.

 
 

참고문헌

문간채와 대문 밖 풍경 --포토존 의사상, 광복회 포고문 석비와 낮은 굴뚝 모습이 이채롭다.

담 밖에서 본 생가의 사랑채 (고헌고택)와 왼쪽의 중문ㄱ허 아래채

담 밖에서 본 생가의 사랑채 (고헌고택)

안채가 보이지 않게 배치된 '고헌고택' 현판이 붙은 사랑채

의사의 독립운동 연표와 활동모습

모양 좋은 반송

복원하기 전의  옛모습

생가 뒷편 고헌 메모리얼 언덕에 있는 의사의 동상과 광복회 관련 기록

 

박상진의사 역사공원 안에 있는 건축물들

 

 

 

제 20대 대통령선거 (03/09)에서 윤성열 후보가 48.6% 득표율로

47.8% 득표를 한 이재명 후보에게  25만여  표차로 당선되었다.

 

반으로 갈린 민심을 통합하고 국내외의 난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는데 지혜와 노력이 더욱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