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사진/15 중국 태황산

중국 태항산 여행 -- 왕가대원

Theodor 2017. 8. 13. 09:45


왕가대원(王家大院)

 

왕가대원은 청나라 때 4대 명문 가문의 하나인 

정승 왕씨(静升王氏) 형제가 지은 대 저택으로 

면적 45,000제곱미터에 1,118칸의 방과 113개 정원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저택의 전체 면적이 북경 자금성의 내정(왕족의 생활공간)보다다 컸다고 하여

중국사람들은 이 왕가대원을 ‘민간의 자금성’,'중국의 민간고궁’과 

같은 찬사를 보내고 있다.

중국정부는 교가대원(乔家大院)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여 놓고 있다.

 

왕씨 가문의 시조였던 왕실(王實)은 두부와 소금장사를 해서 

거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후 쭈욱 장사만 해오다가 17대손이었던 

왕여총(王汝聪), 왕여성(王汝诚) 형제부터 우연한 기회에 관직에 등용되었다. 

관직에 오른 두 형제가 청(淸)나라 때인 

1796년부터 짓기 시작한 것이 바로 왕가대원이다.

왕가대원은 내부에 교육시설, 방위시설 등을 모두 갖춘 

호화 저택으로 300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그 시기 중 50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왕가대원은 크게 동과 서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동쪽은 고가애(高家崖), 서쪽은 홍문보(紅門堡)라 불린다. 

여행객들은 먼저 고가애를 먼저 둘러보고 난 후 

고가애와 홍문보를 잇는 운교를 건너가서 홍문보를 

한바퀴 둘러보고 난 후에 문을 빠져나오는 동선으로 움짐이게 된다.

 

 

고가애(高家崖) 쪽 대원을 들어가는 입구 앞쪽에 

조벽(照壁)이 하나 세워져 있다. 

구룡벽이나 칠룡벽은 왕가의 상징이었고 민간에서는 

이렇게 사자가 들어간 조벽을 많이 세웠다고 한다. 

이 조벽의 문양을 보면 원형 안에 두 마리의 사자가 

여의주를 두고 희롱하는 모습이다. 

산서성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이러한 문양에서 

원형이 상징하는 바는 모든 일이 

원(圓)처럼 순리대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뜻이라고 한다.

 


주용기 친필의 안내판

왕가 대원 입구





수호신인 사자석상



아버지의 거실과 양쪽에 아들과 딸의 거실

2층 건물인 침실



정실 부인의 침상



왕씨 가문 조상인 왕실의 초상화



관리에 등용된 17대 손인 3형제



계단 난간에 조각되어 있는 조형물들



서태후가 묵었던 침실










왕씨 자녀들의 학교인 '양정서숙'

홍문보(紅門堡)​























서민들의 주거지인 토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