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사진/15 중국 태황산

중국 태항산 여행 --면산 정과사,개자추사당

Theodor 2017. 8. 13. 09:35
                        중국 태항산 여행 --면산 정과사,개자추사당  

 

 ★정과사★  

정과사는 포골진신상(抱骨真身像)을 모신 절이다. 

옛 중국에는 지극히 수행이 높은 고승이 열반에 들어가시기 직전에 

금식은 물론 물도 한 모금 안 마시고 앉아서 열반 좌화 하신다고 한다.

스님이 앉아서 원적하신 후 신체가 무너지지 않고 곧게 앉은 채로 

그대로 계시면 바른 수련의 결과의 과실-정과(正果)를 

이 현세에 남기셨다고 하여 그 유체에 진흙을 발라 말린 후 

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채색을 하여 모셨다고 한다.

 즉 성불하신 스님의 진흙 미이라이다.

 면산의 운봉사 정과사 등에는 총 16분의 포골진신상이 있는데 

그 중 네 분이 정과사에 모셔져 있다.

몇 분 스님의 경우 오랜 세월 동안 부분부분의

 표면 진흙이 떨어져 나간 속으로 뼈와 옷 등을 볼 수 있다.

 























 

 

 ★서현곡 풍경구★


면산에는 몇 개 물이 흐르고 폭포가 있는 계곡이 있다.

개자추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올랐던 길이라고 한다.

고도가 높아 한 여름에도 서늘하며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미를 느껴볼 수 있다.



 

 

개공사당

개자추와 그의 어머니를 모신 사당이다. 

개자추는 자신이 모시던 진나라의 왕자 중이(中耳)가 

권력의 암수를 피하여 19년간 유망하던 시기에 

그와 함께 하던 충신 중의 한 명이다.

유망기간 중 중이가 기아에 허덕이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중이를 먹여 살린 할고봉군(割股奉君)의 고사는 유명하다.

중이는 결국 살아남아 진나라에 복귀하여 

춘추오패 중의 하나인 진문공이 되었다. 

그러자 신하들이 다투어 자신의 공을 내세워 녹을 탐하려 하였고, 

중이는 이를 수치스러워 하였다. 

 진문공이 실시한 논공행상에서 개자추는 제외되었다. 

이에 그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면산에 들어가 숨어 살았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문공은 급히 면산으로 달려가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도록 하였으나 개자추는 끝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산에 불을 지르면 견디기 어려워 내려오겠거니 하는 예상으로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홀어머니와 함께 나무를 껴 앉고 불타 죽어버렸다.

이에 문공은 크게 슬퍼하였고, 후세 사람들은 

그의 정절을 기려 개자추가 죽은 후 3일간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으며 그를 애도하였다. 

이것이 청명(清明)절 직전의 3일 기간을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寒湿)의 기원이 되었다.

엘리베이터 상부 계류장

 

 





개자추의 공덕을 그린 벽화와 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