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대성당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 와서 당시의 로마 황제였던 네로에게 재판을 받고 순교한 시기는

 

64년에서 67년 사이라고 추정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사도가 처형당한 직후 그의 시신은 당시 열심한 신자로

 

사도를 따르던 루치나 부인 가문의 소유지에 묻혔다.

 

그 후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사도 베드로의 무덤과 함께 비밀리에 관리해 오다가,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 박해를 끝낸 후

 

사도의 무덤 위에 기념 대성당을 지었다.

 

 

현재의 대성당과 같은 규모는 그 후 386년 당시 열렬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테오도시우스 로마 황제와 그의 아들 아르카디우스가

 

당시 로마의 총독이었던 살루스티우스에게 사도의 기념 성당을 확장하도록 명했다.

 

 건축 설계 전문가였던 치리아데에게 설계를 의뢰하였는데,

 

그는 대성당 내부에 다섯 군데에 통로를 만들고,

 

 80개(24개는 로마 공회당에서 가져옴)의 기둥을 세웠다.

 

10세기 이전의 성당들은 대부분  정면에 정원을 꾸미고 분수를 만들었는데,  

 

그 의미는 세례성사의 중요성을 되살리기 위해

 

이곳에서 물로 죄를 씻은 후  성전에 들어가야 된다는 뜻이다

 

 

마치 사도 베드로의 무덤위에 세웠던 콘스탄티누스의 기념 성당과

 

그 구조나 모양을 비슷하게 설계했다.

 

현재의  대성당의 규모는 1600여년 전에 지었던 규모 그대로이다.

 

대성당은 세기를 거듭하는 동안 수차례에 걸쳐 수난을 당했다.

 

그 중 중요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461년 벼락으로 인해 커다란 피해를 입었고,

 

739년에는 롬바르크족의 침입으로 약탈을 당했다.

 

801년에는 지진으로 천장이 내려앉는 것을 보수했고,

 

847년에는 사라센인들의 침입으로 또다시 약탈당했다.

 

 결정적인 피해를 입게 된 것은 1823년 7월 15일과 16일 밤중에 일어난 대화재였다.

 

이로인해 십수세기를 지탱해 오던 대성당은 하루 아침에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대화재로 말미암아 대성당 건물은 물론이고, 내부에 그려져 있던 벽화를 비롯하여

 

모자이크 등 역사적인 보물은 거의 다 손실되었거나 파괴되었다.

 

레오 12세 교황은 즉위하자 곧 바오로 대성당의 재건을 위해

 

전세계 교회에 특별 요청을 하였다.

 

그 당시 이름 있던 건축가 벨리, 폴레티, 베스피냐니, 칼데리니 등이 참여하여

 

원래 대성당의 설계도대로 복원하였고, 1854년에 교황 비오 9세가 축성하였다.

 

원래의 대성당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전과 똑같이 건축된 성당의 길이는 132미터, 

 

폭 30미터로  로마에서는 성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전세계 10대 대성당 중의 하나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 St Peter's Basilica ]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교의 정신적인 수도이자, 가톨릭 순례 여행의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예수가 죽은 후 각국을 다니며 전도하던 베드로는 현 교회 언덕에서 64년

네로 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었다.

313년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24~349년 사도 베드로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를 지었다.

1506년 교황 니콜라스 5세가 새로운 바실리카 건축을 명하면서 거대한 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120여 년 동안 콜로세움이나 판테온에서 수많은 자재를 약탈해

건물을 지으면서 로마 문화재가 많이 훼손되고,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면죄부를 발행해 나중에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빌미를 제공하는 등

수많은 사연을 남기며 세계 최고의 건물이 탄생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 가톨릭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이다.

깊이 218m, 높이 137m, 총 면적이 22,067㎡로 축구장 4면보다 넓고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기둥 778개, 제단 44개, 모자이크 135개, 동상 395개로 구성된다.

쿠폴라(돔)는 1547년부터 대성당의 건축에 끊임없이 정진했던 미켈란젤로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그의 제자인 쟈코모 델라 포르타가 맡아 1590년에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돔 내부의 직경은 42.56m, 정상까지의 높이는 136.57m이다.

돔에서 내려다보는 시내 전경이 매우 아름다우니 꼭 올라가 봐야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정면은 카를로 마데르노의 설계로 1612년에 완성되었다.

폭 114.69m, 높이 45.55m로 거대한 창문들과 입구, 로비로 이어진다.

최상단에는 넓은 공간이 있고 하나의 발라우스트라(작은 원주들) 위에

6m 높이의 조각들이 있으며 옆에는 두 개의 탑(종탑과 시계탑)이 있다.

가운데 창문은 교황의 강복대로 교황이 새로 선출되었을 때나

성탄절과 부활절에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도시와 세상에)"라는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는 곳이다.

회랑의 5개의 문들은 각각 성당 내부 공간을 구획하는 다섯 개 통로의 입구다.

왼쪽의 첫 번째 문은 '죽음의 문(Porta della Morte)'으로

이 문에는 예수의 죽음, 성모마리아의 죽음, 교황 요한 23세의 죽음 등이 청동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가운데 '청동문(Porta di Bronzo)'은 피렌체 조각가인 안토니오 아베룰리노가

1455년 옛 콘스탄티누스 시대 성당의 것을 옮겨온 것으로

하단에는 베드로, 바오로 성인 두 분의 순교 모습이 있다.

오른쪽의 '거룩한 문(Porta Santa)'은 25년마다 있는 성년()에만 열린다.

나머지 두 개의 문은 선과 악의 문, 성찬의 문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하고 장엄한 공간에 압도되고 호화롭게 장식된 내부에 말문이 막히게 된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서 오른쪽을 보면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 Pieta>가 있다.

성당 안의 조각품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가 성모의 팔에 안긴 모습을 조각했다.

미켈란젤로가 24세 때(1499년) 제작한 <피에타>는 여러 작품 중 유일하게 서명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쿠폴라 아래에는 베르니니가 제작한 발다키노(천개)가 중앙 제대를 덮고 있다.

교황 우르바노 8세의 요청으로 만든 것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과 함께 르네상스,

바로크의 양대 예술작품 중 최고로 일컬어진다.

네 개의 나선형 기둥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올리브 가지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발다키노의 높이는 29m이며 중앙 제대 아래 지하에는 

성 베드로를 비롯한 초기 기독교 시대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교황 요한 23세(1963년)와 바오로 6세(1978년)의 무덤도 볼 수 있다.

 

대성당 지하 무덤 출구 앞에 있는 성 베드로의 청동좌상은

13세기 플로렌스 출신의 조각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작품이다.

베드로의 오래된 대리석상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것이다.

중세부터 이곳에 다녀간 신자들이 베드로의 발에 입맞춤해서

오른쪽 발가락이 거의 다 닳아 버렸다.

 

홈페이지

 

바티칸 박물관과 베드로 대성당 출입구

 

 

바티칸 광장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전면

 

 

 

 

 

 

 

 

교황의 강복대 발코니 

 

 

 

 

 

피에타 상과 성베드로 청동상

 

 

발다키노(천개)--베드로 제대

 

 

 

 

 

 

 

 

 

 

 

 

 

 

 

 

 

 

 

 

 

중앙 돔의 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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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미술관 [ Musei Vaticani , ─ ]

 

바티칸의 산 피에트르 대성당에 인접한 교황궁 내에 있는 미술관으로,

역대 로마 교황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고문서·자료를 수장()하고,

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대화가에 의한 내부의 벽화·장식으로 유명하다.

창설은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 때 벨베데레의 정원에 고대 조각이 전시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클레멘스 14세 치하인 1773년이다.

현재 본관은 피오 클레멘티노미술관·도서관·성()유물관·회화관 등 많은 부분으로 나뉘고,

또 각실은 보르지아실()· 라파엘로실· 지도실이라는 특유의 명칭으로 불린다.

미켈란젤로나 안젤리코의 벽화로 유명한 시스티나성당·파오리나성당·

니코로 5세 성당 등도 미술관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주요 작품은 고대조각에 《아포크슈오메노스》 《벨베데레의 아폴로》 《벨베데레의 토르소》

라오콘》, 고대 회화에 《오디세우스 이야기》 《아르드브란디니가()의 혼례도》,

중세 회화에 《웨르기리우스사본()》 《여호수아기()》,

그리고 르네상스 회화에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최후의 심판》,

라파엘로의 《성체의 논의》 《아테네학당》 《그리스도의 변용》,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히에로니무스》,

카라바지오의 《그리스도의 매장》 등과 역사적인 고문서 ·공문서류도 소장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티칸미술관 [Musei Vaticani, ─美術館] (두산백과)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 최후의 심판, 천지창조 등의 미술작품 사진은 미술관 뜰에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복도 천정화와 양편의 양탄자 지도 등은 사람에게 떠밀려 자세히 볼 수도 없다.

 

 

 

 

 

 

 

 

 

 

 
카타콤베
'안식처'란 뜻을 가지고 있는 카타콤베는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 가난했던 로마인들은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 위에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그리스도가 공인되지 않아 그리스도 인들의 박해가 시작되였으며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으로 기독교가 공인 되기까지
거의 300년 동안 박해는 끊이지 않았고 박해를 피해 지하로 피하게 되었다

 

 

지하에 카타쿰베가 위치한 땅 위 모습.--어머어마한 지하세계가 있으리라고 상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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