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그리스 출국, 터키 재입국

 

그리스 성지순례 마지막날 아침,

카발라 루시호텔에서 아침 6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 후 8시에 출발하였다.

그리스와 터키 국경도시 압살라에서 간단한 출입국 수속 후  터키 땅을 다시 밟다.


<그리스 출입국 사무소>


<터키 입국 통과대>







<터키에 재입국하여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다>




터키의 어느 항구도시 식당에서의 늦은 점심식사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터키인들과 공연비를 받는 즉흥연주>




<지붕 위에 집열판과 온수 탱크가 설치된 전형적인 터키의 주택>



회교 국가답게 어디에나 이슬람 사원을 볼수 있다.

...사원의 첨탑이 1이면 주민들의 공동설립 사원

                                            2이면 부자가 지역민에게 기증한 사원

                                            4이면 국가(슐탄)가 ​건설한 사원으로 구분되며,

                                성직자는 국가에서 임명하고 관리한다고 한다.








<흰색의 벽에 붉은 기와의 주택들이 주변과 잘 어울린다.>




<다시 이스탄불에 들어오자 신시가지가 눈에 띈다.>




<터키에도 아파트 건설 붐이 한창이란다>




넓은 국토를 가진 날인진 몰라도 초고층 아파트는 눝에 띄지 않는다





<복잡한 고속버스 터미널-국토가 넓어 며칠이나 걸리는 노선이 있어 기사가 2명이란다>

이스탄불 시내 곳곳에 옛 성곽 잔재를 쉽게 볼 수 있다.

 


 


                        '14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아르테미스신전과 티아티라  

  

아르테미스 신전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원전 200년에 비잔티움의 필론에 의해 건설된, 

세계의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고대에 가장 훌륭한 신전인, 아르테미스 신전은 다이아나에게 바치는 신전으로 

 한때 그리스 문명과 고대 그리스 문화의 가장 웅장한 업적으로서 있었다.


이 신전은 사냥의 신이고, 자연의 여왕이며,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신이며 

아폴로의 쌍둥이 남매인 아르테미스 신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현재의 터키인 에페수스에 위치해 있었다. 

에페수스는 소아시아의 가장 부유한 항구도시였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127개의 대리석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기둥 하나가 20미터(60피트)에 달했다. 

신전 건설은 리디아의 크로이소스에 의해 시작된 120년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원전 6세기에 처음 지어졌다가, 

200년 후에 불에 타버리고 이후 알렉산더 대왕의 감독 하에 복원되었다. 

그러나 그 위대한 신전은 골트 유목민의 침략, 지진과 약탈자들에 의해 

조금씩 파괴되었다.

오늘날, 몇 개의 대리석 기둥과 파괴된 잔해만이 

영광스러웠던 신전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신전 맞은편 자연적으로 잘 다듬어진 바위산>
 

 



<신전 가는 입구에 늘어서 있는 석관들>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이 잘린채로 서 있는 폐허가 된 신전>





<그나마 온전히 서 있는 대리석 기둥 상부의 이오니아식 조각솜씨>











<상부가 질린 돌기둥들이 땅위에 자리잡고.........>





<제단이었던 벽돌 건물의 잔해>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다듬은 기둥이 아무렇게나 나 뒹굴고.......> 


 <자리를 찾지 못한 잔해가 널부러져 있다>


티아티라 (현재명 아크히사)


교통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 현재명 아크히사는 B.C. 7세기 경에는 

리디아(Lydia)인들이  거주하며 펠로피아(pelppia)라 불렸다.

B.C. 3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인 SELEUCUS 는 이곳에 도시를 세우고

이곳 출생인 자기 딸 이름인 티아티라라 이름 붙이고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 시켰으며,


한 때 로마와 동맹 관계에 있던 버가모 왕국의 지배 하에 있다가 로마의 속령이 되었다.

 비잔틴 제국 시에는 요한묵시록의 일곱 교회 중의 하나가 있었으며 

음란과 방탕으로 하느님의 진노를 샀으나 크게 번성하였으며 

1425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티아티라는 지형상 훌륭한 요새라고는 할 수 없으나 

지리적으로 길고 넓은 골짜기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많은 유대인들을 이주시켰기때문에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상술과 지리적 특성은 자연히 상업도시로 번성케 했으며,

이때 이미 상인조합(길드/Guild) 조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유적은 현재 Akhisar라는 도시 밑에 매몰되었고, 

단지 도시 한 모퉁이에 아폴로 신전과 회랑, 그리고 비잔틴 교회의 페허만 남아있다.


 



 현재의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시가지

​차창 사진
<양옆에 드넓은 올리브 농원과 밀밭이 펼쳐지는 한적한 고속도로...> 


<도로 휴게소에서 맛있는 점심식사>




<인구 500만이 사는 도시 이즈말 주변>



현재 시골이나 도시는 이슬람 사원이 공동체의 중심을 이룬다. 
 

터키 곳곳에는 같은 형태의 주택을 이룬 마을이 눈에 많이 띈다.

풍광 좋은 해안 언덕에 위치한 클라로스 호텔 빌라에서 숙식하다.



< 해질 무렵 무지개가 뜨다.>

해안가 풍경​


                                   2014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그리스출국, 터키 재입국 

 

그리스 성지순례 마지막 날 아침,

카발라 루시호텔에서 아침 6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 후 8시에 출발하였다.




그리스와 터키 국경도시 압살라에서 간단한 출입국 수속 후

 터키 땅을 다시 밟다.


<그리스 출입국 사무소>

 



<터키 입국 통과대>




 

 



<터키에 재입국하여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다>
 


터키의 어느 항구도시 식당에서의 늦은 점심식사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는 터키인들과 공연비를 받는 즉흥연주>
 

 



<지붕 위에 집열판과 온수 탱크가 설치된 전형적인 터키의 주택>



이슬람 사원​

이슬람 신자가 전 국민의  95%가 넘는 터키의 도시나 마을의 중심은 

이슬람 사원이다.


회교 국가답게 어디에나 이슬람 사원을 볼수 있다.

...사원의 첨탑이 1이면 주민들의 공동설립 사원

                                2이면 부자가 지역민에게 기증한 사원

                                4이면 국가(슐탄)가 ​건설한 사원으로 구분되며,

                        

                        성직자는 국가에서 임명하고 관리한다고 한다.









<흰색의 벽에 붉은 기와의 주택들이 주변과 잘 어울린다.>
 

 



<다시 이스탄불에 들어오자 신시가지가 눈에 띈다.>
 

 



<터키에도 아파트 건설 붐이 한창이란다>






 

 



<복잡한 고속버스 터미널-국토가 넓어 며칠이나 걸리는 노선이 있어 기사가 2명이란다>


시내 곳곳에 옛 성곽 잔재를 쉽게 볼 수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