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성 북쪽 40리쯤 떨어져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우고 있는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있는 곳이다.

성지에 들어서면 고요하면서도 편안함이 가슴에 와 닿는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지를 둘러보면 가슴이 깨끗해짐은 느낄 수 있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신자들이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인다 하여 미리내로 붙여졌다.

본래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의 한 곳이다. 

김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비로소 본당이 설립됐을 때

이곳에는 이미 1천6백여명의 신자가 있었다.

26세에 처형당한 김대건 신부는 조정에서 장례마저 치루지 못하게 하여 처형당한 지

40일이 지난 다음에야 이민식 빈체시오가 간신히 시신을 빼내어 남의 눈을 피하며

일주일을 등에 지고 이곳 미리내로 옮겨와 안장할 수 있었다.

미리내는 1972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을 시작해

1989년에 웅장한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이 완성되었는데,

성지에 오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지 한 가운데 웅장한 기념성당이다. 

* 김대건 1822~1846(순조22 ~ 헌종12)


 세례명 안드레아 우리 나라의 최초의 신부이며 순교 성인으로, 

  충청 남도 내포에서 독실한 천주교도 부모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천주교 탄압을 피해 경기도 용인의 골배마을로 이사와서 살면서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에게서 천주교의 교리를 익혔다.

1836년(헌종 2) 프랑스 신부 모방한테 영세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 최방제 등과 함께 중국의 마카오에 건너가,

파리 외방 전교회 칼레리 신부에게 신학을 비롯한 서양학문과 프랑스어. 라틴어를  배웠다.

그 후 마카오에 민란이 일어나자 1839년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6개국어를 공부하였다.

1842년(헌종 8) 프랑스 군함 제독 세실의 통역관으로 있다가

몇차례의 실패 끝에 1845년(헌종 11) 고국을 떠난 지 9년만에 돌아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포교에 힘쓰다가 페레올 신부를 데려오기 위하여

쪽배를 타고 중국 상하이에 건너가 24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그 후 페레올. 다블뤼 두 신부를 모시고 충청남도 강경을 거쳐서 귀국하였다.

그는 지방선교에서 10년 만에 고향에서 어머니를 만났으나 아버지는 순교한 뒤였다.

1846년 최양업과 다른 신부의 입국을 위하여 비밀 항구를 찾다가 체포되었는데,

서울로 끌려와 40회에 걸친 문초를 받고 9월 새남터에서 순교(당시 26세)하였는데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참수하여 군문 효수할 것인데

헌종이 편법을 써서 효수하지 않고 매장하게 하였는데

매장 40일 후에 양성면 미리내에 사는 이민식 씨에 의하여

밤으로 7일에 걸쳐 운구하여 현재 미리내 묘지에 안장하였으며,

1925년 7월 5일 로마교황 비오 XI세로부터 복자위에 올림을 받았고

1984년 5월 6일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직접 거행한

시성식에서 카톨릭 성인 자리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돌 벽돌로 건축된  구 성당

묵주의 기도 길 --규모가 어마어마히다.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과 성모당

 

성모당 내부와 김대건 신부의 목각인형

기념성당 내부

 

김대건 신부님 묘소와 기념경당

 

 

귀가 길 문의휴게소에서 저녁식사

' 14 터키,그리스 성지순례여행의 시작


14박 15일('14/06/02 - 06/16)간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수도회)

김성태 (토마) 신부님이 인솔하는

성지대표부 28차 성지순례단 32명이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여행길에 오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지상 모습이 신기할 때가 많다.


비행기에서 본 신비로운 지구의 모습


순례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한 이스탄불의 호텔과 터키에서 이용한 관광버스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이슬람 사원 

-- 국민 98%가 이슬람교인인 터키에는  사원이 공동체의 중심이다.>


이스탄불 국제공항 -- 바오로의 탄생지 타르소스를 가기 위해 국내선 항공기를 타다.

해발 3000m를 넘는 타우루스(황소라는 뜻) 산맥의 만년설


비행기에서 본 터키의 어느 도시와 산지와 평야


가로가 잘 정비된 어느 도시의 도로

<우리나라 포항처럼 철강도시인 이스켄데른시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어있다.>

터키의 모든 마을은  이슬람 사원이 마을의 중심이다.


중동성지순례 여행--카타르 ->이집트

카타르 도하에서 이집트 카이로 행 비행기로 환승한 후

아라비아 반도와 시나이 빈도를 건너 가면서

비행기에서 바라본 풍경들.....

사사막 한 가운데 보이는 정체불명의 원형 무늬들.

황량한 사막의 모래지대와 수풀이 무성한 곳의 경계지역

 

아무리 사막이라도 해안가에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시나이 반도 왼쪽 홍해의 어느 해안이라고 추측됨.

.

사막의 절벽 지대와 오랜 세월 동안의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깊은 골짜기가 생겼다.

드넓게 펼쳐진 불모지인 황야에도 자연의 힘에 의해 아름다운 경관이 연출되고 있다.

곳곳에는 지금도 연기가 나는 화산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소규모의 피라미드도 여기저기 보이고.......

카이로 시가지의 모습 --강은 아마도 나일강의 지류 중 하나 일게다.

 

카이로국제공항과 공항의 일몰

 

마타리야 콥트 정교회의 아기 예수 피난 성당

헤로데의 아기들 학살을 피해 아기 예수 일행이 이집트에 올 때와 이스라엘로 갈 때 두차례 들렸다는 곳.

 

 

중동 성지순례여행 --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2010년 3월 29일부터 4월 10일까지(13일 간)

평화방송 여행사와 라파엘 여행사가 주관하는

이집트의 카이로와 룩소르, 이스라엘 전역과 시나이반도 ,요르단 페트라를

순례하는 여행을 다녀온 사진들이다.

 

출입국 장소인 인천공항과 이용 항공편인 카타르 항공기

 

행기에서 본 사막 위에 이루어진 카타르  도하와 도하국제공항

 

 

사막 위에 새로 건설되고 있는 현대도시인 카타르 수도 도하

카타르 항공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이집트 카이로 연결 편을 타기 위해

도하에서 8시간 쯤 대기 시간에 시내 관광을 하였다.

 

도심에는 여러 형태의 현대적인 특색있는 건물들이 속속 건축되어 있고

바다를 간척하여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카타르는 아라비아 반도 페르시아만 연안에 위치하여

수도 도하는 한창 바다를 메워 새로운 도시를 건설 중이다.

낙타 시장(?)

거리의 과일가게

 

도하 아시안게임 주경기장과 상징탑, 기념 조각작품

도하 중심가의 고급 주택과 이슬람 사원

 

경마장과 물속에서 훈련시키는 말

 

중동 아랍계의 유명한  알자지라 방송국

 

유명한 미술관 (?)

 

해안도로 옆의 상징 조각작품들.

 

 

카타르 국회의사당 (?)

타타르 국왕과 각료들이 근무하는 행정기관 건물 (?)

포르투갈 성모 발현지 파티마 광장 

성모 발현지인 파티마의 광장은 동쪽의 대성당과 서쪽의 삼위일체 대성당 사이에

길이는 500m가 넘고(본인의 짐작), 폭은 약 240m로 바티칸 베드로 광장의 2배가 넘는다고 하며,

수용인원이 약 30만이라고 하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문시에는 100만이 모였다고 한다.

 

대성당 가까이 있는 예수 성심상에서  삼위일체 대성당 쪽으로 바라본 광장 

대성당 앞에서 바라본 광장 -- 오른쪽 흰 부분이 무릎 걸음으로 기도를 바치는 고행의 길이다.

 

광장의 바닦 --사방 약 10 cm 정사각형 돌을 심어 만들었다.

 

성모님이 발현한 위치에 있는 상수리나무 -- 원래 나무는 고사하고 아들나무라고 함.

 

촛불 봉헌소

 

성모님 발현 장소에 건립된 소성당

제대 뒤 유리관 속의 성모상이 있는 곳이 발현장소라고 함

주교님의 집전으로 매일 저녁 미사가 봉헌됨 

순례객들이 참여하는 촛불 행렬에 나서기 전의 장미 꽃다발 위의 성모상

 

왼쪽의 소성당을 출발하여 예수성심상을 돌아 대성당 앞을 지나 다시 소성당으로 오는 행렬을 한다.

촛불 행렬에 나서는 성모상

 

촛불행렬에 나서는 각국의 순례객들은 모국어로 묵주의 기도 1단씩을 바친다.

감동하고 은총을 많이 받는다는

수많은 각국에서 온 성지 순례객들

 

 

유럽성지순례 -- 포르투갈 파티마 대성당

 

파티마 성모발현지는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님이 발현하여 

죄의 회개와 로사리오의 기도를 권고한 사건으로 이 후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30년 레이리아의 주교가 신빙성을 인정하면서 ‘파티마의 로사리오 성모’ 발현지로 공인되었다.

포르투갈 파티마 성모발현지 대성당은1928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대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여 

1953년 10월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로사리오 대성당이라고도 하는데, 묵주의 기도 15개의 경당(소성전) 과

성당 전면 양옆에는 발현 목격자 3명의 무덤이 있으며,

대형 수정십자가 아래 7t 무게의 황금관이 올려져 있는 높이 약 65m의 종탑이 있다.

대성당 양쪽에 주랑이 있어 수녀원과 병원이 있는 건물을 포함한 여러 채의 건물과 연결해 주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모가 발현했던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이웃한 넓은 산책로인 코바에는 순례자들이 모여드는데 이 주변이,

성모님이 어린이들 앞에 발현했다고 믿어지는 장소에 작은 성전이 있기 때문이다.

파티마 지도

1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광장 동편에 자리한 대성당

대성당 앞에 서 있는 예수 성당은 순레자들을 축복하는 모습이다.

천상모후의 관을 쓰시는 성모님이 묘사되어 있는 천정 부조작품과  성당 중앙제대

 

성당 안에는 성모님 발현을 경험했던 루치아와 프란치스코의 무덤이 있다.

예수님의 생애를 내용으로 하는 14처 경당이 대성당 양쪽에 마련되어 있어

소수의 신자들이 따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규모가 꽤 큰 파이프 올갠

대성당 종탑 중간 부근에 손에 묵주를 건 성모님의 모습이 참 자애로워 보인다.

멀리서나 가까이서 보아도 너무나 성스럽고 아름다운 대성당

성당 뒷편의 아침 일출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녁 촛불 행진 때의 대성당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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