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동남아여행 --캄보디아 앙코르 왓 (Angkor Wat) 사원  

앙코르 왓 (Angkor Wat) 사원 
 

 씨엠립(Siem Reap)에서 북쪽으로 약 6㎞에 위치해 있으며

앙코르의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장엄한 규모와 균형, 조화 그리고 섬세함에 있어서 최고로 꼽힌다.
앙코르(Angkor)는 '
도시사원’ 이라는 뜻이 된다.

앙코르 대부분의 사원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비해 이 사원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아마도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세계가 있다고 보고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고려인 듯하다. 서쪽을 향해 있는 까닭에 석양녘에 황금 빛으로 불타오르는 앙코르 왓의 모습은

신의 세계에 근접한 예술의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이 사원은 수리야바르만(Suryavarman) 2세 (1113∼1150)에 의해

12세기 전반에 약 37년에 걸쳐 건축되어 힌두교의 비슈누에게 헌정 되었다.

앙코르 왓의 구조는 힌두교의 우주관에 입각한 우주 모형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앙의 높은 탑은 우주 중심의 메루(Meru)산의 정상이며

주위의 5개의 탑은 주변의 봉우리들을 상징한다.

외벽은 세상 끝에 둘러쳐진 산을 의미하며 해자(인공호수)는 ‘우주의 바다’를 의미한다. 이 해자의 폭은 약260m, 길이는 약 5.5㎞에 달한다.

이 해자를 건너기 위해서는 나가(Naga)난간을 따라 이어지는 250m의 사암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앙코르 와트의 전경을 바라보노라면

완벽한 조화와 균형 그리고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하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해자에는 과거에 커다란 악어가 살았다고 하나 지금은 어린아이들의 물놀이장이 되어 있다. 입구에서 본당에 이르는 길은 약 350m로서 길을 걸으며 본당 전체의 균형미, 그리고 하늘과 어우러지는 스카이라인을 음미하노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진한 쾌감을 체험하게 된다.

길 중간 양옆의 아담하고 우아한 건물도 눈여겨 볼만한데 서고로 이용되던 건물이다.

서고에서 조금 더 가면 폭 50m, 길이 65m의 연못이 있는데 말라있을 때도 많다.

본당으로 올라가는 입구 전에 있는 사자가 지키고 있는 십자모양의 단상은 ‘영광의 단상’으로 불리는데 예전에는 왕이 종교의식을 참관하거나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본당으로 들어서면 외부 복도의 벽면에 인류의 자취 중 손꼽히는

명작인 환상적인 부조가 펼쳐진다.

또 중앙 통로로 가다가 옆의 사잇길로 약 50m쯤 벗어나 사각에서

중앙의 탑을 보면 5개의 탑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감상할 수 있다


 


 앙코르 왓 출입구 사무실--이곳에서 즉석사진이 찍힌 관람권을 받는다.





폭이 250m가 넘는 해자 (침입을 막기 위한 인공수로)와 사워과 연결된 교량


서쪽 출입구 다리를 지키는 사자와 뱀 조형물--다리와 담의 난간은 대부분 뱀 조형물로 되어 있다.



해자를 건너는 사암돌다리 중간의 넓은 공간



돌다리와 출입구 건물

 --가운데 문은 군주 출입문이라 출입금지,  관광객은 양쪽 신하 출입문으로 입장함





출입구 안쪽에 서 있는 신상


건물의 돌창살과 미녀들의 부조작품





서고로 이용됐던 건물





인공 연못






아름다운 정원



앙코르 왓 사원의 전경 -- 3개의 탑과 양쪽의 부셔진 석탑






주변에 돌이라고는 없는 곳에 많은 암석을 사용하여 사원을 건립한 것을 보면

고대의 완들의 힘이 얼마나 컷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석탑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1층 미물계에서 2층 인간계로 올라가는 계단


사원의 부분 사진들--2층 인간계에서 3층 신들의 세계로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다.



회랑과 회랑의 천정 조각 모습




역사와 왕의 일대기가 부조되어 있는 회랑의 안쪽 벽면












미물들이 사는 1층의 정원 -- 위 사진 오른쪽 담장에 부조되어 있는 미녀상들.,



사원 안쪽의 돌로 된 정원









캄보디아 씨엠립 현지식 식당의 민속예술 공연 모습

현지식을 먹으며 민속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캄보디아문화마을 간판 

인어공주 춤


공주의 춤


남녀 어부의 사랑을 주제로 한 춤




              


             
 08동남아(베,캄) 반데스레이 사원 

 

반데스레이 사원 

 

 '여자의 성채'를 뜻하는 반데스레이 사원은 앙코르 왓 사원들 가운데 드물게 

붉은 사암을 사용하여 석양 때 붉은 빛 광채를 내품는다. 

중앙사당의 '테바다 상'은 발견 당시  유럽에서는 '동양의 모나리자' 로 찬사를 받았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옛 앙코르 왓 문화를 체감할 수 있다.



유네스코 지정 인류문화유산 기념비




사원 들어가는 길






사원 왼쪽 출입문



문 지붕의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







중앙 사당





화려한 자태의 3탑







아름다운 부조 조각품





출입로에서 본 사원의 전경



순례를 온 인도(?) 승려들






08동남아(베,캄) - 출국--씨엠립
출국--씨엠립 
해외여행 > 08동남아(베,캄) | 2008-09-06 (Sat) 14:29

 

08/09/01 - 09/06 (4박6일간)

 베트남 하롱베이와 하노이와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여행을 가다.


09/01/  10 : 30 베트남항공 편으로  김해를 출발하다

....4시간 40분간 남지나해를 날아가 호치민에 도착



메콩강에 휘감긴 호치민시



베트남 호치민( 구 사이공)시 탄손누트국제공항에 도착하다

호치민시 탄손누트공항에서 캄보디아 행편을 갈아타고 캄보디아에 들어가서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인 바라이호수 부근의 씨엠립 국제공항에 도착하다. 


프랑스가 건설한 씨엠립국제공항은 너무 작아 비행기까지 걸어가 타고 내린다.


씨엠립 국제공항 대합실에 있는 코끼리를 탄 석가모니상


캄보디아의 상징인 머리 여럿인 뱀과


씨엠립의 투숙호텔과 문화재를 소개하는 호텔의 조경





예쁘고 생갬이 살아닜는 열대 화초





민속공연













북한 음식점-- 손님을 위한 공연을 한다.





버스에서 본 공항부근의 풍광 --사원 건물과 야자수가 있는 전통 농가

.




08,캄보디아 - 타 프롬 (Ta Prohm) 사원
타 프롬 (Ta Prohm) 사원 
해외여행 > 08동남아(베,캄) | 2008-09-08 (Mon) 13:38

                    타 프롬 (Ta Prohm) 사원

타 프롬은 ‘브라흐마의 조상’ 이라는 뜻으로 바이욘을 건설한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은 불교사원이다. 
이 사원은 가로 600m, 세로 1,000m로서 앙코르 사원 중 가장 큰 규모 중 하나이다.
 사원 내부 벽에 새겨진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해 보면 
이 사원에는 2,700여 명의 스님들이 거주하였고 
약 3,000여 개의 마을이 이 사원의 관하에 있었다고 한다.
 그 재산도 엄청나서 금 500㎏, 35개의 다이아몬드, 
4,000여 개의 진주 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추모행사 때에는 166,000여 개의 촛불이 쓰여 졌고 
약 8만 명의 노역자가 종사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된 상태로서 예전의 영화를 가름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폐허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은 프레아 깐(Preh Kahn)과 
더불어 가히 앙코르에서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 
무화과, 보리수 등의 거대한 나무들이 벽과 지붕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담을 넘고 문을 감싸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엄청난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예술의 극치와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보존론자 들은 이 사원을 보수하는 것은 오히려 사원을 망치는 길이고 
자연과 함께 스러져가는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복원 공사 -- 완전 복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닜다고 함









공명의 방
































문등왕 자야바르만 7세              
 08동남아(베,캄) | 2008-09-08 (Mon) 13:57

              자야바르만 7세 (1120/25경~1215/19경)

  크메르(지금의 캄보디아) 제국의 왕(1181~1215경 재위)으로 

영토를 최대로 확장시켰으며 앙코르 톰을 비롯해 

사원·도로·휴양소·병원 등의 건설 사업에 힘쓴 캄보디아의 영웅

왕의 화장터 위(문둥왕 테라스)에 있는 문등왕 자야바르만 7세 석상


생애

  자야바르만 7세는 앙코르 왕가 출생으로 

신심이 깊고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자야라자데비 공주와 결혼했으나 

일찍 죽자 역시 신심이 깊었으며 학식이 있어

 이전에 불교사원의 수석교사로 임명된 적이 있는 그녀의 언니와 재혼했다.

  자야바르만 7세의 어린 시절과 청년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그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현재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참파 왕국 근처에서 살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의 아버지 다란인드라바르만 2세(1150~60 재위)가 사망했을 당시 

그는 참파에서 군사 원정중이었으며 그의 형(사촌인 듯함) 

야소바르만 2세(1160~66 재위)가 즉위하자 자야바르만 7세는 참파에 그대로 남았고

 뒤에 그는 궁정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캄보디아로 돌아왔으나 

너무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트리부바나디티아바르만(1166~77 재위)이 

야소바르만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고, 

고향에 머물면서 왕위를 계승할 기회를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약 12년 후 자야바르만 7세가 50대 후반이 되었을 때 

참파 왕국이 침입하면서 그 기회가 생겼다. 

참파의 침입으로 트리부바나디티아바르만은 죽고 앙코르는 약탈당했으며 

외국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황에서 자야바르만 7세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했고

 5년이 채 못 되어 침략자를 내몰았으며 

캄보디아의 주도권을 장악해 1181년 61세의 노령으로 

재건된 크메르 제국의 왕위에 올랐으며 30년에 걸친 황금의 치세가 시작되었다. 

이 기간에 제국은 그 영역 판도나 왕실 건축 분야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건설사업

  자야바르만 7세는 재위 동안 정복사업을 계속 벌여 참파, 

남부 라오스, 말레이 반도와 미얀마 일부를 그의 지배하에 두었고, 

점차 자신의 정력이나 조직 능력을 선대의 왕들이 해왔던 

종교적·정치적 건설 사업에 쏟아 바욘을 비롯한 많은 멋진 사원을 새로 건립했다. 

사원은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대승불교식 피라미드 사원으로서 

왕실신앙의 중심점이자 자야바르만 자신의 능묘로 지은 

대승불교식 장례사원으로 자야바르만의 부모에게 헌정되었다. 

수많은 지방 사원에는 부처의 상징과 함께 자야바르만 7세를 

묘사한 왕실 불상의 축소 모형을 두었는데, 그 원형은 바욘에 안치했다.

  그는 현재의 앙코르 톰인 앙코르 시를 재건했고 간선도로도 확대하여 

바욘과 왕국으로부터 각 지방으로 뻗어나 갔으며

이 도로들을 따라서 100개 이상의 휴양소가 지어지고 

100개 이상의 병원이 만들어졌다. 

자야바르만 7세는 왕국의 전역에 병원들을 설치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위대한 부처인 바이샤지아구루 바이두리아프라바의 가호 아래 두었다.

  그의 시대에 건설된 사원들에서 치밀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자야바르만 7세는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건설사업을 진행하는 데 

집착했던 것 같은데 어떤 학자들은 자야바르만 7세가 사원 건설에 

조급한 마음을 가졌던 이유는 그가 많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부족한 시간이나마 효율적으로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한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또다른 학자들은 대부분 불교건축물인 방대한 건설계획은 

불교, 특히 불교사원 건축에 큰 노력을 기울였던 아내 자야라자데비와 

그녀의 언니의 영향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야바르만 7세가 나병환자로서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학자들의 추측이 맞는다면 자신의 죄를 덜고 공덕을 쌓음으로써 

두려움을 이겨내겠다는 마음이 그의 신심과 종교적 열정에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의 진짜 동기가 무엇이었든지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크메르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자야바르만 7세가 

이룩한 정도의 업적을 남긴 왕은 거의 없다.


현대의 명성

  앙코르 왕국의 역사에서 자야바르만 7세가 그토록 중요한 인물이었는데도 

후대 캄보디아 역사책에는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으나 

근대에 그의 치세에 해당하는 시기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흥미를 끌면서 

자야바르만 7세는 모범적인 민족영웅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가 캄보디아 국가 영토를 가장 넓게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영향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하여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욕구를 충족시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야바르만 7세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는 보다 공정하다. 
학자들은 자야바르만 7세가 성취한 거대한 업적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왕조의 인적·물적 자원을 과도하게 소모했기 때문에,
 이후에 크메르 제국이 창조성을 상실하고 마침내 몰락하게 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앙코르 톰 사원


문둥왕 테라스에서 본 코끼리 테라스와 군대를 사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넓은 장소


코끼리 테라스 The Terrace of Elephants
  왕궁의 정문인 동쪽 입구에 약 350m길이로 이어지는 단상으로 
왕이 공공행사나 군인들의 사열을 관장하던 곳으로 동쪽 광장을 향하고 있는
 단상은 3개인데 양 옆은 코끼리들이 부조되어 있고 
중앙쪽의 단상은 가루다가 받치고 있다. 
중앙의 것은 왕이, 양옆의 것은 신하들이 사용하던 것 같다. 
  단상 위에는 나무로 된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 곳에 올라 서면 아래 중앙광장에서 장대한 병사들의 분열과 
코끼리 퍼레이드 등이 금방이라도 펼쳐질 것 같고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왕의 위용을 가늠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코끼리 테라스 아래


코끼리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의 아름다운 부조




군대 사열대로 추정되는 단과 아래 넓은 공터

  

광장 앞쪽 끝에는 12개의 탑(12 Prasate Sour Prat)이 열병하듯이 서 있어

위용을 더하고 있는데 파수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들 위에는 크레앙(The Kleangs)이라는 건물들이 있는데 이는 ‘창고’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건물의 용도는 외국에서 온 사실들을 접대하는 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캄보디아 바라이 호수

 

 

경상남북도 넓이와 맞먹는 세계 최대의 인공호수인 '바라이 호수'에서는

연간 어획량 약 160만t으로 캄보디아인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라고 한다.



바라이 호수의 관광 유람선



호수 입구의 현대적인 수상가옥




관광 유람선





호수 하나군데 있는 수상ㄹ마을에 정박한 관광선




가장 낡은 수상가옥을 겸한 고기잡이 배





전통적인 고깃배 형태의 수상가옥




전통적인 고깃배들의 어로 모습







유람선 선착장과 수상가옥



수상 마을에 물건을 파는 배와 판매시설들



끝을 볼 수 없는 넓은 인공호수 




한국학교를 짓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수상 휴식처

--전망대에서 호수 전경을 조망한다.







광활한 늡지와 지천인 부레옥잠













수상 개신교회











톤레샵 호수


       6개월             6개월 간의 건기를 대비한 식수 저장을 목적으로 만든

                          톤레샵 호수의 모습

              





 왓트마이 사원

폴 포트 정권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새로 만든 

작은 킬링필드라  불리는 왓트마이 사원











납골당으로 쓰이는 사원 앞 마당의 탑들


 

              

해골 보관 건물의 해골들







자동차에서 찍은 관공서로 추정되는 캄보디아 전통양식의 건물

 


시엠레아프(크메르어 영어: Siem Reap City, 씨엠립.) 

 

캄보디아 시엠레아프 주의 주도로 씨엠립은 17세기 타이아유타야 왕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과 관련이 있다.

앙코르 와트, 바이욘 등이 있는 앙코르 유적군 관광의 거점이 되는 도시이며 남쪽에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호수인 톤레삽 호가 있다.

 

착륙전에 본 시엠립 시가지와 편의 시설이 없고 규모는 작으나 캄보디아의 특징이 잘 나타난 국제공항

 

공항 대합실의 코끼리를 탄 부처님상 

 

호텔 정면의 문둥이왕 상

 

 

 

 

호텔의 여러 모습들

 

 

호텔방에서 바라본 시엠립시의 특색있는 지붕

 

 

 

북한음식점과 종업원들의 공연모습

 

관공서이거나 박물관(?) 건물과 야자수가  많은 농가의 모습

 

 

 

 

반데스레이  Banteay Srei사원

 

시엠립에서 34km 떨어진 반데스레이 사원은 라 젠드라바르만 2세 (944 ~ 968년)  시기인  10세기 중반(967년) 

 힌두교의 시바신과 비쉬누신에게 바친 사원으로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반데스레이 사원은

규모는 작지만 '크메르 예술의 극치 , 또는 보석'이라 평가 받는다.

 

부조들이 정과 망치가 아닌 섬세한 여성들이 바늘로 정교하게 조각하였을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반데스레이 사원은 '여인의 성채'라는 의미로 왕이 만든 사원이 아닌 왕의 신하이자 왕자의 스승으로 총애를 받던

 바라문 승려 '아즈나바라하'가 건축한 이 사원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문화성 장관을 지낸 앙드레 말로가 1923년  어느 날 이 사원에 도착하여

여신상 4점을 도굴하여 밀반출 하려다  적발되어 실형을 선고 받고 이후 '왕도의 길'이란 소설을 발표하였다.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 앙코르의 여신상과 유물의 도굴, 밀반출과 관련된 것이 알려진 후에 아직까지도

앙드레 말로가 도굴하려던 여신상을 보기 위해 유럽인들이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앙드레 말로가 도굴하려던 여신상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