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은사님과 선배 5분이 부산으로 여행을 와서

첫날 날씨가 나쁜 중에도 시내 관광 후 다음날

경주로 여행을 가 불국사, 안압지, 대능원을 둘러봤디.

천마총에서는  문화재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들었다.

 

UN 기념공원 명패와 정문건물

 

기념공원 전경

UN기와 참전국기 게양대

 

기념공원 해설관

 

수영만 매립지 고층 아파트 군과 누리마루 내부 정상 회의장

불국사

불국사는 경상 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사찰창건,

고려 시대 역사책《삼국유사》에  이 절은 신라 경덕왕  751년에 김대성이 세웠다.

그러나 불국사의 내력을 적은 《불국사 역대 고금 창기》에 따르면

이 절은 528년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절의 규모를 크게 늘렸고,

751년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 차례 증축으으나 규모가 2,000여 칸으로 커졌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왜군에 의하여 건물이 불타 버렸으나

금동 불상과 옥으로 만든 물건 그리고 돌로 된 다리와 탑만이 불에 타지 않았다.

왜군의 방화로 불타 버린 불국사의 목조 건물들은 광해군 때인 1612년에

· 남행랑 · 범종각 등이 복구되었고,

인조 때인 1630년에 자하문, 1648년에 무설전이 다시 세워졌다. 

 

1659년에 대웅전이 세워지는 등, 순조 때인 1805년까지 40여 차례의 복원 공사로

안양문 · 극락전 · 비로전 · 관음전 · 나한전 · 시왕전 · 조사전 등이 다시 세워졌다.

 

 조선 말기에 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복원 공사도 중단되었고,

이미 세워졌던 건물들도 낡고 파손된 상태로 방치되다가 일제 침략기를 맞았다.

 

1924년에 대규모의 보수 공사를 하면서 다보탑을 해체 · 수리하였다.

그 때 탑 속에서 금동 불상 · 사리 장치 등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으나

행방 불명되었고, 관련된 기록 자료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

후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하였다.

이 때 여태까지 옛 터로만 방치되어 오던 자리에

무설전 · 경루 · 관음전 · 비로전 · 화랑 등이 복원되고,

대웅전 · 극락전 · 범영루 · 자하문 등이 새롭게 단청되었다.

불국사 경내 면적은 38만 8,570㎢이며, 사적 및 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내에 국보급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그 중 잘 알려진 문화재로는 국보 제20호 '불국사 다보탑'을 비롯해

국보 제21호 '불국사 삼층 석탑'(석가탑),

국보 제22호인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국보 제23호인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국보 제26호인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

국보 제27호인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

보물 제61호인 '불국사 사리탑' 등이 있다.

 

국보 제23호인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국보 제 20호와 21인 다보탑과 석가탑(3층석탑)

 

국보 제 20호 다보탑

 

 국보 제21호 석가탑(3층석탑)

 

대웅전과 석등

대웅전 안에 국보 제26호인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 

제27호인 '불국사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이 안치돼있다.

가까운 곳의 연화칠보교(국보 제22호) 와 뒤의 청운교 백운교

 

안압지

신라 왕궁의 후원으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674년에 완성되었다.

1975~86년의 발굴조사에 의해 유구가 밝혀졌는데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석축호안과 서쪽 호안변에서 5개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부정형의 석축호안은 서쪽 호안선만 직선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호안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다.

입수구는 동쪽과 서쪽의 호안이 만나는 곳에 설치되어 있고 출수구는 북쪽 호안에 있으며,

연못 안에는 3개의 섬이 있다.
연못의 바닥에서 목선·목상·장신구·주사위 등과

불교미술품인 불상, 광배, 보상화문전 등 다수가 발굴되어

번성했던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보다 총체적으로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월지의 연꽃

 

천마총과 배롱나무꽃

 

대능원의 소나무 숲길

UN 기념공원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조성을 시작해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되어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 전국 각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를 모아 부산에 안장하였고,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부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 

12월 15일 한국 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사항을 전달받은 유엔은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문 제 977(X) 호를

 채택함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과 대한민국간에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 을

체결됨으로써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현충원과는 달리 대한민국유엔에 영구기증하고 

국제연합에서는 영구관리를 결의함으로써 

지금은 매장된 전사자의 출신 국가 11개국이 관리위원회를 구성 관리하며, 

관리비도 11개국이 분담하며 대한민국은 절반 가까이 부담한다고 한다. 

그와 별개로 2007년 10월 24일 등록문화재 359호로 등록되어 있다.

부산시에서 피란수도 유적으로 다른 여러 장소들과 함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주로 영연방 국가들과 프랑스, 터키, 네덜란드 등 11개국에서 파병된 

UN군 2300위가 모셔져 있으며, 다른 참전국 군인들의 유해는 본국으로 송환됐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은 실종자 포함 약 4만 명인데 

사실은 대부분 미군이며, 미군의 경우 원칙적으로 전원 본국 송환되었으나


미국을 제외한 3천여 명 중에도 영국군터키군에서만 천 명 넘게 발생했다. 

그리고 15개국 합쳐서 약 천 명이다. 

대한민국에서 파견한 유엔군, 예컨대 카투사 전사자 36위도 모셔져 있다.

 한국에서 근무한 유엔군 중 희망자에 한해 이곳에 모셔져 있는데,

 희망자라는 의미는 한국전쟁의 전사자가 아니라 한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유엔군 군인이 천수를 누린 후 이곳에 안장되기를 희망한 경우를 말한다. 


영연방 국가들은 전사한 땅에 매장하는 문화가 있어 대부분 한국에 남아 있으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전사자 배우자가 희망하면 합장도 해 준다.



 봉안 통계














유엔묘지 길건너 있는 부산문화회관


유엔 기념공원에 묻힌 전사자들의 기념탑



최연소 참전 전사자의 이름을 딴 수로의 비단잉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모든 장병들의 이름을 기록한 추모명비









박정희 대통령 방문 기념식수목과 위령탑 현판

참전 유엔군위령탑


참전국가별 전사자수를 동판에 새겨 위령탑 벽에 붙여놨다.

 무명용사의 길에 맑은 물이 넘쳐 흐른다.


대연수목전시원

유엔기념공원과 평화공원 사이에 있는 수목전시원은 

힐링하기 좋은 도심의 휴식공간이다.


아열대 식물 체험관의 내부





조롱박 터널

개량무궁화와 산책로





꽃무릇 재배지




넓은잎 삽니무

문화회관 정면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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