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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3일 기다림'..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

Theodor 2017. 3. 23. 07:41

'1073일 기다림'..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

                                                             
해수부 "인양 시도 하루 만인 3시45분 선체 보여"

거치까지 2주 걸려..내달 1~5일 목포신항 도착

목포신항서 최소 4개월 수습, 사고조사 진행

김영석 장관 "투명하게 공개..품격 갖춰 수습"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 입력 2017.03.23 06:58


세월호가 침몰 3년 만인 23일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본인양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내달 1~5일께 목포신항에 도착할 가능성이 커졌다. 

목포신항에 도착하면 미수습자 수습, 선체조사가 본격 진행될 예정이다.

◇해수부 “오전 3시45분께 수면 위 첫 관측”

해양수산부는 23일 “이날 오전 3시 45분께 스태빌라이저로 추정되는

세월호 구조물 일부가 육안으로 수면 위에서 관측됐다”고 밝혔다. 

스태빌라이저는 선박 양 측면에 날개 형태로 설치돼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다.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지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해수부는 이어 “오전 4시 47분에는 세월호가 해저면에서 높이 약 22m에 도달했다”면서

 “본체 일부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오전 11시경에 수면 위 13m까지 떠올라 작업이 완료된다. 

시험인양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작업이 끝나게 되는 셈이다.

앞서 지난 22일 오전 10시 시험인양이 시작됐다. 

이어 이날 오후 3시30분께 선체가 해저면에서 약 1m 인양되면서 

오후 8시50분에 본인양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후 세월호가 시간당 3m 내외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오전 3시45분께 모습을 드러냈다.


본인양이 순조롭게 착수되면서 세월호 선체 인양(2.5일), 안전지대로 운반해 반잠수식 선박에 

세월호 선적(6일), 목포신항까지 이동·거치(5일) 순으로 인양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세월호 인양을 시작한 이후 목포신항에 거치할 때까지 총 인양 기간은 13.5일이 걸릴 전망이다.

◇빠르면 4월1일, 늦으면 5일 목포신항 도착
세월호를 인양한 잭킹바지선 철여 현장.(사진=해양수산부)

송상근 해수부 대변인은 “목포신항에 거치하는 시점은 유동적”이라며

 “인양을 시도한 이후 빠르면 10일, 늦으면 14일 정도 걸릴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빠르면 4월1일, 늦으면 4월5일께 목포신항에 거치될 전망이다.

우선 인양작업은 잭킹바지선 2척이 투입돼 선체를 끌어올리면서 시작된다. 

선체 무게 중심 등 각종 계산된 항목을 확인하고 보정 값을 컴퓨터 제어시스템에 적용해 

66개 와이어(인양줄)에 걸리는 하중을 정밀하게 배분하게 된다. 

이어 44m 해저에 침몰한 세월호 밑에 깔린 33개 리프트 빔을 선체가 

수면 위로 13m가량 드러날 때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이후 잭킹바지선은 세월호를 싣고 반잠수선이 대기하고 있는 안전지대(조류가 양호한 지역)로 

이동한다. 이어 대기 중인 반잠수선에 세월호를 싣는 작업이 진행된다. 

반잠수식 선박은 수중 26m까지 가라 앉을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세월호를 실은 뒤 잭킹바지선을 떼내고 선체 고정·부양 작업이 이뤄진다.

선적 작업이 끝나면 반잠수선이 목포신항 철재부두까지 이동하게 된다.
 
운반이 완료되면 며칠 동안 물빼기 작업과 추가 고정작업이 진행되고 세월호가 육상에 거치된다. 

거치되면 부식을 막기 위해 세척과 방역 작업이 진행된다. 

이후 미수습자 수습, 화물·유품 정리, 사고원인 규명 조사가 이어지게 된다. 

정부는 오는 7월20일까지 4개월간 이 부두를 임차했다.


◇뜬 눈으로 지샌 가족들 “목포신항까지 안전하게”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이 22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시험 인양
 구역에서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수습자 가족들은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바다 속에서 목포신항으로 올라오고 가족을 찾을 때 인양이라 할 수 있다”며 

“작업자들의 안전과 공정이 순조롭게 이뤄져 인양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기도와 간절함을 보내주시면 인양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고 호소했다.

가족들은 작업 현장과 1.7㎞가량 떨어진 바다에 떠 있는 어업지도선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인양 과정을 지켜봤다. 

세월호 참사로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는 

단원고 2학년1반 조은화, 2반 허다윤, 6반 남현철·박영인,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 일반승객 권재근·권혁규 부자, 이영숙 등 9명이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목포신항 거치 후 미수습자 수습 계획과 관련해서 

“거치하는 순간부터 영상을 녹화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며 

“유해발굴 전문가를 확보해 예의와 품격을 갖춰 수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세월호 선체 보전 방식에 대해선 “선체를 그대로 보전하는 방안, 

인천·안산·진도의 추모관에 배치하는 방안, 

육상으로 멀리 이동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한 조치 등 3가지 방안이 있다”며

 “인양 이후 상황을 점검한 뒤 지자체, 의원들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회·유가족 추천 위원으로 구성된 세월호선체 조사위는 지난 21일 특별법에 따라 이르면 

이달부터 최장 10개월간 △세월호 선체조사 △선체 인양 지도·점검 

△미수습자 수습, 유류품 및 유실물 수습과정 점검 

△선체 처리에 관한 의견표명 등을 수행할 예정이다. 


다음은 4월 초까지 진행될 세월호 인양 과정이다.
① 잭킹바지선 2척 현장 배치.(출처=해양수산부)
② 리프팅빔과 잭킹바지선 와이어로 선체 연결
③ 세월호를 수면 위로 인양.
③ 세월호를 수면 위 약 13m까지 인양 완료.
④ 세월호를 안전지대에 대기 중인 반잠수식 선박으로 이동해 태우는 선적 작업 진행.
⑤ 세월호를 반잠수식 선박에 고정시키고 물에 띄우는 고박 및 부양 작업 진행.
⑥ 목포신항으로 세월호 싣고 이동.
⑦ 묶었던 고박을 해체하고 및 육상에 거치.
(출처=해양수산부)

박근혜는, 왜 3년간 세월호 인양을 안했을까?

 [기자의 눈] 세월호 인양, 진실도 함께 끌어올릴

[이대희 기자]

 
지난해 6월, 해양수산부 선체인양추진단은 세 차례 시도 끝에 세월호 인양에 실패했다고 발표했

다. 안정적으로 배를 들어 올리겠다던 인양업체 상하이샐비지는 갑판부에 6미터(m)에 달하는 상

처만 내놨다. 

예측할 수 없는 맹골수도의 물길이 이 상처를 얼마나 헤집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어떤 중요한 증거물이, 어떤 아이의 유품이 사라졌을지 알 수 없다. 

아직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 중 누군가가 인양 후 발견되지 못한다면 어찌할까. 

당초 해수부는 세월호 선수를 들어 올린 후, 그 아래에 리프팅 빔(인양기계)을 넣어 부력제로 

배를 띄워 플로팅 독에 선체를 싣겠다고 했다. 하지만 작업은 계속 실패했다. 

해양전문가 사이에서 이 방식이 문제 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다. 

유가족은 전문가 상담을 진행해달라고 했다. 정부는 무시했다. 상하이샐비지만 바라봤다. 

상하이샐비지는 관련 경험이 부족한 업체였기에 인양 입찰을 따낼 때부터 의혹을 받았다.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진상 규명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 연장을 거부했다. 

결국, 해상 크레인은 잭킹 바지선으로, 플로팅 독은 반잠수식 선박으로 변경됐다. 

당초 상하이샐비지에 밀려 입찰에 실패한 관련 기술평가 1위 업체가 주장한 인양방식이었다.

23일, 이 방식으로 1073일간 바다에 잠들었던 세월호는 수면 위로 올라올 예정이다. 

시계를 더 앞으로 돌려보자. 박근혜 전 대통령 구사대 역을 자처하며 대선 후보로까지 부상한 

김진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015년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유가족에게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정부는 이런 막말을 내세워 인양 단념 분위기를 전파하는 데 동조했다. 

전경련을 매개로 '특정 세력'과 밀접한 금전적 거래 관계를 유지했으리라 추정되는 

어버이연합 등은 세월호 진실을 요구하는 이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집단'이 '어떻게 전화번호를 입수했는지는 모르지만' 

대한민국 불특정 장년층 상당수에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은 6억 원을 받고, 

천안함 유공자 유가족은 3000만 원만 받았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 

세월호의 아픔이 생생하던 2014년 10월 10일, 감사원은 세월호 참사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참사 당시 구조활동을 지휘한 김석균 전 해경청장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진도VTS센터장, 123정장, 목포해경서장 등 해경 관련자 4명의 해임도 요구했다. 

소방방재청, 안전행정부, 해수부의 책임도 나열했다. 청와대 책임은 없었다. 

그런데, 반전이 벌어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서야 진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30일, <한겨레>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를 근거로 이 감사 자료를 청와

대가 발표 전 미리 받아봤고, 최종 감사 결과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작품이었다고 보도했

다. 

잔인하지만 시계를 더 돌려보자. 2014년 4월 16일. 

박 전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방 안에 머물렀다. 출근도 하지 않았다. 

그 긴박한 시간, 지휘를 책임져야 할 청와대는 "VIP 보고용 영상"이나 해경에 요구했다. 

대통령은 눈물 연기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해수부는 유가족은 물론, 

취재진도 인양 작업에 접근하지 못하게끔 했다. 

정부 차원에서 집요한 방해 공작이 내내 이어졌다는 말은 근거 없는 주장일까, 

귀납적 추론일까. '정부에 버금가는 강력한 세력이' 거대한 여론 조작에 나섰다는 주장은 

음모론일까, 합리적 추정일까. 

그리고 박 전 대통령 탄핵 5시간 만에 정부는 세월호 인양을 결정했다. 

3년을 기다린 세월호 시험인양은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탄핵되자마자 곧바로 성공했다. 

곧바로 세월호 인양이 결정됐다. 세월호는 3년간 인양을 못한 게 맞을까, 안 한 게 맞을까. 

2017년 3월 23일 오전 11시,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진실을 끌어올려야만 할 때다. 

뒤늦은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할 때다. 

▲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청와대 책임을 묻는 여론이 커지자,
 2014년 5월 눈물정치로 위기를 돌파하려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