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해외성지순례/09 유럽성지순례

2009년 유럽 성지순례 --프랑스 루르드

Theodor 2016. 6. 15. 17:50

프랑스 성모발현지 루르드(Lourdes)

 프랑스의 피레네 산맥 기슭에 위치하며 급류인 가브드포 강의 양안으로

 발전된 루르드는 중세시대에 그 성채와 함께 전략적 요새를 이루었다.

백년전쟁중 프랑스가 18개월에 걸친 포위공격 끝에 1406년 잉글랜드로부터 빼앗았다.

오늘날의 루르드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은 1858년부터 시작된다.

그해 2월 11일에서 7월 16일 사이에 베르나데트 수비루라는 14세의 소녀가

루르드에서 가까운 가브드포 강 좌안의 마사비엘 동굴에서 성모 마리아의 환영을 수차례 목격했다.

1862년 교황이 그 환영은 진짜 계시라고 선포하여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숭배가 공인받게 되었다.

베르나데트에게 계시된  동굴의 지하 샘물은 불치병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선포되어, 그

때부터 루르드는 순례의 대중심지가 되었다.

매년 환자나 불구자 5만여 명을 포함하여 거의 300만 명의 순례자들이 매년 이곳을 찾고 있다.

 

1876년 동굴 위에 세워진 바실리카가 많은 수의 순례자들로 점점 비좁게 되자

1958년에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지하교회가 세워졌다.

 

1876년 동굴 위에 세워진 바실리카(대성당)

대성당 돔 위의 황금관

성전 제대

 

성전 돔의 천정화와 묵주의 기도 벽화

 

 

대성당 전면에 모자이크로 된 빛의 신비

야간 십자가의 길 기도 --성모상을 앞세우고 촛불을 켠째

순례객 각국가의 언어로 1단씩을 외우며 광장을 행진한다.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마리아 발현사건, 베르나데트 성녀와 마시비엘동굴 

  

성모마리아 발현사건은 최고의 미스테리현상이 아닐 수가 없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모마리아 발현현상이 신의 존재와 종교적 축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아주 좋은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몇 건의 유명한 성모마리아 발현현상들이 보고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파티마 성모마리아 발현가리반달 성모마리아 발현현상이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유명한 성모마리아 발현현상이다.

 그보다 훨씬 전인 1858년에 이미 프랑스 루르드지역에서 성모마리아 발현현상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유명한 루르드 성모마리아 발현으로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사건이다.

 

프랑스 루르드동굴에서 성모마리아를 보았던 베르나데트는 그 일을 계기로 해서 나중에 수녀가 되었으며,

더욱 놀라운 일은 그녀가 1879년 사망한 후에 일어나게 되었는데,

베르나데트수녀의 시신이 13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썩지않는  시신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1844년 프랑스 피레네산맥 북쪽 산악지역의 작은마을 루르드지역에서 가난한 제분업자의 맏딸로

태어난 베르나데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심부름을 잘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녀였다. 

14살 소녀 베르나데트는 어느날 동생 마리와 친구 잔느와 함께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기슭에 있는 마시비엘동굴 근처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 가브강가 부근에서 동생과 잔느가 먼저 앞서간 채로 홀로 남아있던 베르나데트는

마사비엘동굴쪽에서 폭풍이 휘몰아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게된다. 

마사비엘동굴 부근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게 폭풍이 몰아치는 그 사이에,

갑자기 새하얀 광채를 내뿜는 한 여인의 형체가 베르나데트의 눈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동굴앞 장미덤불 위에서 나타난 그 여인은 베르나데트에게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여인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며, 하얀색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푸른색띠를 두르고 하얀빛깔의 묵주를 팔에 두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 베르나데트는 너무 놀라서 묵주를 꺼내들고 묵주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녀는 베르나데트에게 2주 동안 계속 이동굴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후 베르나데트는 그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마사비엘동굴로 찾아갔으며, 그곳에서 그 빛나는 여인을 만나 묵주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날,

베르나데트가 만난 그 여인은 동굴앞에 있는 작은 흙탕물을 가리키면서,

베르나데트에게 그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라고 말했다.

베르나데트는 그 흙탕물이 있는 곳으로 가서 땅을 파헤치자 엄청난 양의 샘물이 쏟아져 나왔다.

  베르나테트는 그 여인의 지시대로 그 샘물을 마시고 샘물로 목욕을 했다고 한다.

베르나데트 수비루가 샘물을 마신 직후 그녀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만성적인 천식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 샘물이 그 유명한 루르드샘물이며, 그후 불치병에 걸린 수많은 환자들을 치유해준

기적의 샘물로 명성을 크게 떨치게 된다.

 

그렇다면 베르나데트에게 나타났던 그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느날 동굴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베르나테트는  여인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베르나데트의 세번째 반복질문에도 계속 침묵하던 그여인은 베르나데트의 네 번째질문이 이어지자,

비로소 나는 원죄없는 잉태이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여인의 말대로 원죄없는 잉태한 여인이라면 바로 성모마리아를 뜻하는 것이다.

이세상에 원죄없이 잉태한 분은 예수님과 성모마리아뿐이기 때문이다.

 

마사비엘동굴에 나타나는 여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있었던 교황청은

1860년 루르드사건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를 벌인 끝에,

베르나데트 앞에 나타나신 분이 성모마리아임을 공인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베르나데트의 성모발현 소식이 프랑스와 유럽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수많은 난치병환자, 불치병환자들이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고,

이 동굴의 샘물을 마시고 병에서 완치되는 놀라운 기적들이 계속 일어났다고 한다.

 베르나데트수녀는 수녀원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신의 지병인 천석이 다시 재발해서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했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자신을 혹사시킨 끝에,

1879년도 35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녀가 사망하고 30년이 지난 후에 그녀의 시신을 옮기기 위해서

교황청 조사관이 그녀의 관을 개봉해보았다가 엄청 놀랐다고 한다. 

죽은 지 30년이 지난 베르나데트수녀의 시신이 전혀 썩지않고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나데트수녀가 1879년도에 사망했으니 지금까지 137년이라는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성 길다드수녀원에 안치되어 있는 베르나데트수녀의 시신은

그녀가 살아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전혀 부패되지 않고 깨끗한 모습으로 누워있다고 한다.

  베르나데트수녀의 시신은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베르나데트수녀가 생전에 성모마리아를 만났을 때, 성모마리아로부터 들었다는 말이 있는데,

'네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큰 고통이 따르겠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큰 행복을 누릴 것이다라는

성모마리아의 말이 실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1920년대 그녀의 시신이 썩지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된이래로,

많은 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메고 베르나데트수녀의 썩지않는 시신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마디로 말해서 베르나데트수녀의 시신이 썩지않는 이유는 과학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이며,

기적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영원히 썩지않는 베르나데트수녀의 시신은 인류가 겪은 사건 중에

최대의 미스테리한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유품 전시관 앞의 베르나데트성녀 석상

 

초기 루드르의 모형과 사진자료

 

전시관의 성녀의 일생 스테인드글래스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성녀의 수녀복

성녀가 생활했던 수녀원과 성녀의 유품

성녀가 첫영성체를 한 성당

 

 

프랑스 루르드의 마사비엘동굴

침수장-- 수많은 참배객이 봉사자의 도움으로 침수한다.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지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