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계곡 발굴 책임자였던 영국인의 숙소와 사무실
이집트 룩소르 합셉수트 장제전
일명 델 엘 바하리 (강변의 수도원)라 불리는 이곳은,
BC1504년 합셉수트가 이복아들인 투트모스3세가 7세에 왕이 되었을 때, 왕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여왕이 되고 본인을 위하여 지어진 장제전 신전이다.
이 신전을 세운 이유는 그녀가 여자이고 또 왕이 투트모스3세가 있는데도 굳이 자기가 파라오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 주장과 그녀의 보모을 신성시하여 경배하고 아몬신을 경배하기 위하여 지었다.
이 신전은 당시 이름난 건축가“세넴무트”가 지었는데 신전 뒤쪽의 수직 절벽의 지형을 따라 3층의 테라스 모양으로 지어 올라갔다.
3층의 테라스기둥에 합셉수트여왕이 오시리스모양으로 조각이 되어 있다.
2층 부분의 벽면에는 합셋수트여왕이 신하들과 병사들을 데리고 푼트지역(지금의 소말리아)을 방문하여,
서로 인사하고 교역하고 그 곳의 헨나나무(향유나무)의 묘목을 배로 실어와
이집트 땅에 심어 키운 후 향유를 신에게 바치는 여행기록문이 남아 있다.
2층의 왼쪽 신전은 하토르여신을 위하여, 오른쪽은 아누비스신을 위한 신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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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트모스3세가 합셉수트여왕이 죽은 후 7일 동안 신전을 완전히 파괴하였는데
신전의 벽면에 합셋수트왕의 이름표(카르투쉬)를 지우고 얼굴을 쪼아버렸다.
파괴된 돌조각의 그림을 보고 지금부터 40년간 폴랜드 고고학자에 의하여 재복원되었다.
신전의 동쪽은 나일강과 주변의 녹지대가 보이고, 멀리 정면으로 카르낙 신전을 마주하고 있다.
신전의 뒤쪽은 약 70-100m 높이의 수직절벽이 신전을 감싸듯이 보호하고 있어 지형 특성상 이집트 최고 명당자리이기도 하다.
이집트 건축학적으로 걸작으로 꼽히며 나폴레옹의 학자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관심과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97년 11월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테러에 의하여 관광객 69명이 죽은 곳이다.
합셉수트 장제원의 부속 건물
장제원 출입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벽돌문
합셉수트 장제원은 약 70-100m 높이의 수직절벽이 신전을 감싸듯이 보호하고 있어 지형 특성상 이집트 최고 명당자리.
장제원 뜰에서 바라본 룩소르 서쪽 풍경 -- 카르낙신전과 일직선상에 있다.
허물어진 신전에서 나온 돌멩이들....
신전 건축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거처로 추정되는 동굴들.
장제전의 파괴된 거대한 돌기둥들과 조각작품들
장제전 2층 벽면의 채색 벽화들
"왕가의 계곡"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비행기로 50분, 직선거리로 약 500km 떨어진 곳에 유명한 관광지 룩소르가 있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수도 테베의 남쪽 교외에 해당한다.
이곳에는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두 강가에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동쪽 강가에는 카르나크 신전과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한 룩소르 신전 등이 있고,
건너편 서쪽 강가에는 왕족과 고관들의 암굴묘, 그리고 여러왕의 장제전(장례와 제사를 지내는 장소)등이 남아 있다.
나일강 서안 지역은 해가 지는 땅으로 사후 세계와 이어져 있다고 해서 '네크로폴리스(죽은 자의 거리)테베'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왕가의 계곡'은 나일강 서안의 메마른 계곡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황량한 이 땅은 아멘호테프 4세가 중부 이집트의 텔엘아마르나에 천도해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
신왕국 제 18왕조(기원전 1400년경)투트메스 1시에서 제 20왕조 람세스 11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왕의 암굴묘가 있는 곳이다.
이 땅에 왕묘를 세운 것은 도굴을 피하기 위하여 매장한 묘를 숨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또 상부에는 표고 450m의 알쿠른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어서 피라미드 형상을 한 산의 외관이 왕묘를 세우는 데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태양이 지는 나일강 서안 중에서도, 죽은 왕의 매장지로서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에는 '타이네트(골짜기)', '타세트아아트(위대한 장소)'등의 이름으로 불린 이 골짜기는,
지금은 '와디알무르크(왕들의 계곡)'라 불리고 있다. 왕가의 계곡은 동서로 갈라져 있는데,
지금까지 약 60개의 묘와 20여개의 피트(지면에서 곧게 내리 판 굴), 즉, 수혈이나 굴착한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1922년 11월에 카터(H. Carter:1873~1939)가 투탕카멘(Tutankhamen)왕묘(KV62)를 발견하고 난 이후 새로운 왕묘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미국의 고고학자 위크스(K.Weeks)에 의해 람세스 2세의 왕자들의 묘(KV5)의 재발견과 람세스 2세의 묘.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왕묘에 대한 재조사가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
피라미드 형상을 한 해발 450m의 알쿠른 바위산의 외관이 왕묘를 세우는 데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왕가의 계곡 출입구
멤논의 거상
원래 이곳은 제 18왕조인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의 신전으로
자연과 고대 여행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는 신전을 지키는 2개의 거상만 남아있다.
멤논의 거상은 19.5m 높이의 거상으로 멤논(Memn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오스(Eos)와 티토노스 (Tithonus)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에티오피아의 왕으로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도우러 갔다가 그리스군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이 상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났는데,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멤논 왕이 그의 어머니 이오스에게 인사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2개의 거상 중 하나가 멤논과 닮았다고 하여 멤논의 거상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아가멤논과는 다른 인물.
북쪽의 입상은 아멘호텝의 어머니 무테무이아와 여왕 티이의 입상이 있었으나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붕괴된 유적에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음악소리가 났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집트인들은 이 소리가 신이 전하는 소리라고 믿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 AD 130년 하드리안 황제를 포함해서 멀리서 많은 방문자들이 방문을 했는데,
이 상이 로마인들에 의해 AD 199년 수리되면서 멈췄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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