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을 중 큰 고을이었던 동래부 교육의 중심이었던 향교로
조선 태조 1년(1392)에 처음 개원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38년(1605)에 재건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이전되었다가
순조 13년(1813)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향교는 성현에 대한 제사와 경전을 공부하는 강학 공간으로
구성되며
동래향교(東萊鄕校)에는 교수와 훈도가 각 1명씩 배정되었고,
학생 정원은 70명이었다.
교재로는 『소학(小學)』, 사서오경(四書五經), 『효경(孝經)』,
『근사록(近思錄)』과 역사서, 시문 등이 사용되었다
강학 및 기숙 공간으로 쓰였던 동재와 서재
공자(孔子)[B.C.551~B.C.479]를 비롯한 중국의 큰 유학자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大成殿),
중국 유학자와 우리나라 유현 18명의 위패를 봉안한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대성전 출입문
향교를 빛낸 분들의 공덕비와 한자 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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